'88만원 세대' 론의 실증적 허구성: 세대착취는 실재하는가(socio 님 포스팅)
1. (존칭생략) socio가 인용한 중앙대 신광영 교수의 <세대, 계급과 불평등>(「경제와 사회」2009년 봄호(제81호))은 우석훈의 88만원세대론에 대한 반박이다. 실증분석을 토대로 이론적인 비판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한 자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socio의 말대로 그것이 반드시 세대 간 갈등의 위험성을 기각했다고, 88만원세대론을 논파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본다. 통계는 그 자체로 어떤 주장을 반박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해석될 뿐이다.
2. 우선 신 교수의 연구방법론인 타일지수Theil Index의 사용에는 이견이 없다(지니계수Gini Coefficient가 아니라 타일지수를 사용한데는 용이성 외의 다른 요인이 있을 듯 하다.). 다만 자료에서 당연시되는 전제인 '연령대 상승에 따른 소득증가'와 구조조정 및 종신고용제 사이의 상관성에 대한 의문이 든다. 즉, 자료가 IMF 구제금융기인 1998년에서 비교적 최근 기간인 2007년까지의 9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이 시기에 기업의 구조조정 강화와 종신고용제 약화가 고용불안정-소득불안정이라는 현상과 직결되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 자료에서 구조조정과 종신고용제가 연령대 상승에 따른 소득증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종신고용제와 연령대 상승에 따른 소득증가는 충분조건은 성립해도 필요조건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추측은 가능할 것 같다.).
3. 또, 두 노동패널 자료만으로는 2003년 ~ 2007년 사이의 국제금융시장의 팽창과 국내자본시장의 상대적 자유에 따른 경기호황(신자유주의의 최전성기라고 인식되었던 시기이자 펀드시장이 과잉팽창했던 시기)이 '부의 양극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확인할 수 없을 것 같다(어느 비판자가 비슷한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자산소득이 부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덧붙여 노동패널 자료는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을 통해 도출한 것으로 추측된다.).
4. 1998년 연령 코흐트별 계급 분포와 2007년 연령 코흐트별 계급 분포를 보면 두 표는 9년 사이의 국민소득 감소를 반영하고 있다. 한편, socio는 20대의 취업률과 중간계급·노동계급 정규직 진입률 사이의 차이에 대해
"사회적인 차원에서 20대의 문제는 사교육을 통한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하였고, 취업 준비로 4년 이상을 보냈는데, 정작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난을 겪으면서 생기는 소모적인 교육제도와 청년 실업자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경제위기 이후 20대만의 독특한 문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는데(정정 : socio의 견해가 아니라 신광영 교수의 해석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2007년 자료 중 중간계급 정규직 진입률(30.0%)은 그렇다 쳐도, 높은 노동계급 정규직 진입률(44.2%)에 대해서는 좀 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상대적으로 고학력인 지금 20대의 대학진학률을 확인하고, 20대의 노동계급 정규직 진입 과정에 대한 정성적·정량적 자료가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5. 신광영 교수의 연구는 88만원세대론에 대한 비판에 닿아있지만, 동시에 자료에서 두드러지는 건 60대 이상 고령 인구의 비정규직화 심화현상(1998년 노동계급 비정규직 14.6% -> 2007년 20.5%)이다. 세대 간 갈등보다 계급 간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는 하지만, 계급 간 갈등에만 주목해서는 두 노동패널 자료 사이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상 60대 이상 고령 인구의 비정규직화-이는 인구 고령화와도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88만원세대론과 상충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사회에 대한 비관적 전망으로 같이 묶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물론 2007년 이후 88만원세대론의 빠른 확산으로 인해 고령화 및 고령 인구의 비정규직화 문제가 다소 소외된 감이 있다.).
6. 요컨대 자료가 우석훈의 '88만원세대' 개념을 완전히 논박한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socio 스스로 밝혔듯이 성별 변수를 통제했을 경우 세대착취 가설의 부분적 타당성이 검증될 수 있다고 했는데, 88만원세대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대상 중 20대 여성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한겨레21,
<골라서 잘린다, 30대 여성 비정규직>(제754호),
<출발부터 빚더미, '마이너스족'의 늪>(제737호)은 직·간접적으로 20대 여성의 실업과 비정규직화를 다루고 있다.). 게다가 세대와 성별 외의 변수, 즉, 지역, 학력, 장애여부 등을 고려한다면 88만원세대론을 "문화사 차원의 속류적 해석과 허울 좋은 정치신학"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다(흥미롭게도 20대-여성-지방-고졸(및 그 이하)까지 고려한다면 이에 가장 근접한 직종이자 시대적 아이콘은 '시다'와 '공순이'다.).
7. 더 나아가 우석훈의 '의도'까지 파헤치려는 악의 섞인 몇몇 덧글은 우석훈의 '88만원세대' 개념은 물론, 신광영 교수의 비판적 연구와도 관련이 없다. 연세대의 생태주의 선본을 '우석훈 선본'이라고 부르는 것이야 자유지만, <88만원세대>가 20대 중산층(이른바 '강남 좌파')에게 어필했다는 현상을 바탕으로 우석훈의 의도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태도는 온당하지 않다. 88만원세대론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근거인 "정작 책을 읽어야 할 20대 비정규직들은 그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에는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은 <88만원세대>'만' 안 읽는 것이 아니라, <88만원세대>'도' 안 읽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이나 주장의 동의 여부를 떠나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노동 및 생활) 조건을 먼저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8. <88만원세대>는 출간될 때부터 논란을 염두에 두었다고 본다. 책의 성공과 개념의 확산에는 으레 비판과 비난이 따르기 마련이고, 개념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반감도 커지기 마련이니 작용-반작용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감수해야 할 일이다. 거꾸로 88만원세대론이 아니었으면 20대 비정규직화-빈곤화 문제가 이만큼 공론화가 되었을지 또한 의문스럽다.
'88만원세대' 개념이 빛을 발했던 이유는 바로 한국사회가 '다음 세대'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를 묻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그 동안 좌파도 우파도 이에 대한 어떤 전망도 제시하지 못할 때, 거칠고 다소 위험을 수반하더라도 다음 세대의 생존과 세대 간 공존을 위한 신호를 보내는 작업이 '88만원세대' 개념 아니었을까. 그 점에서 신광영 교수의 연구도 끝내 '88만원세대' 개념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88만원세대' 개념이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주요 프레임으로 제시된 지 2년. 어떤 개념이 진실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보다, 개념의 극복이 현실의 극복으로 연결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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