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그 한 때의 유행. 무한회귀의 주인장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시의적절한가??
(Sigmund 님 포스팅)


한 때 '포스트모더니즘'에 관심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일명 사사방)을 썼던 이진경의 해석을 따라가며 라캉, 푸코, 들뢰즈를 겉핥기 한 것 뿐이었지만.

그리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을 때는 우리나라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유행'은 이미 한창 지식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다음이었다.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곤 하는 저 역사적 순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한 뒤", 세상은 변했다고, 모던한 시대는 갔다고 지식사회는 떠들어댔다. 이 때 새로운 개념인 것처럼 튀어나온 것이 저 '포스트모더니즘'일진대, 이는 유럽의 68혁명 이후에 구미 지식사회에서 급진적으로 퍼져가던 무수한 이념들의 도가니였다. 

이런 흐름에서 좌와 우의 구분은 별로 없었다는 인상이 든다. 좀 더 정확하게는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소련의 붕괴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전향(?)했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축에서 한 축이 무너지면서 세계가 다극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념과 사상의 다양한 분화로 상징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승승장구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건축, 미술, 음악, 문학에서 그런 조류는 이제 '대세'가 된 것 같아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유행은 끝났다. 유행이 끝나면서 담론도 사라졌다.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조차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유행이 끝난 데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이 갖는 모호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68혁명 이후로 기존 권위의 반발과 다양한 삶의 추구라는 방향이 모더니즘 이후의 사상 경향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무수한 사상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다발로 묶으려던 순간, 그 방향의 현실성은 사라져버렸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포스트모더니즘 하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기껏해야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가 아닐까. 

자크 라캉,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장 보드리야르, 자크 데리다, 폴 사르트르 등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사실 어떤 공통점으로 묶이기엔 무리가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적-철학적 개념이 우리에게 너무 어렵게 받아들여진 것도 포스트모더니즘을 난해하게 만드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도대체 삶-정치니, 시뮬라크르니, 기관없는 신체라는 말이 무슨 뜻이며, 그걸 아는 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68혁명 이후의 유럽의 사상경향을 이해하려는 미국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뚜렷한 논리로 경험적 지식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려는 논리-실증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이 철학을 마치 추상화를 그리듯 하는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상상해 보자. 덕분에 우리는 가뜩이나 난해한 사상을 '모던하게' 이해하는 미국 지식인들의 해설로 더더욱 난해해졌다. 이래저래 미국 만세다(응?).

세상 어디에도 모더니즘은 끝나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전근대(pre-modern)는 끝났어도 포스트모던(post-modern)은 없다는 것이다. 이진경은 포스트모던 말고 탈근대(ex-modern)이라는 용어를 쓰는 게 적합하다고 말했는데('철학의 외부'), 근대라는 말을 버린다고 해서 근대가 끝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이제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게 좋겠다.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갖는 자포자기가 나는 거북하다. 이는 앞서 말한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주로 맑스주의를 대체하는 대안이념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제시한 탓인데(이진경도 이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다.), 속칭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낡은' 맑스주의 공격에 구 좌파는 변절이니, 체제편입이니 하며 맞공격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세상이 발전하고 특히 지식과 생활 측면에서 '다양성'이 추구된 덕분에(굳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도 미셸 푸코나 질 들뢰즈의 사상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들은 지금도 난해하다. 볼펜으로 본좌들 만화나 베끼고 있는 수준에 프랑스어로 된 추상화(그것도 칸딘스키 레벨로)를 감상한다는 건 숨이 턱턱 막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갖는 역사성을 생각하면서(한 마디로 그 유행은 끝났다는 것이다.), 그 사상가들을 하나하나 만나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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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itena 2008/11/11 01:05 # 답글

    포스트모더니즘.. 이 나라에선 유행이라 씁쓸하지;; 아우....
  • 에드슈 2008/11/11 01:19 #

    뭐 이미 지나기도 했고... 근데 이 밤중에 안 자냐;
  • 바로 2008/11/11 01:30 # 답글

    난 싫어 정말.
    포스트모더니즘이 싫은게 아니라 탈가치적이고 냉소적인 사람들의 태도가 싫어.
    천박한 지식으로 중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싫고,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이들의 입을 침묵하게 하는 이들도 싫어.
    흠.. 나도 자야겠지;;
  • 에드슈 2008/11/11 20:52 #

    갑자기 왜 분노를 터트리나.ㅋ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조어 자체의 한계도 있지 않았나 싶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불리는 철학이나 예술작품을 자기 생각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다른 담론의 힘을 빌려 자기권위를 세우려는 천박함도 있었던 거 같아.

    근데 다들 왜 1시에 이런 얘기하고 난리인거야? ㅋㄷ
  • 2009/01/25 14:2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opord 2009/01/25 19:37 #

    기든스의 포스트모더니티를 도서관에서 발견해서 언젠가는 읽어보마 벼르고 있습니다.^^ 확실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스펙트럼이 넓다보니 오해도 많고 그런 것 같습니다.

    한참 부족한 블로그랍니다. 저도 제가 한 말에 대해서 계속 반성하고;; 더욱 정진하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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