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229 무한회귀의 주인장

1. 아르바이트 구직에 관해 쓰다가 지워버렸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지만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다. 괜찮아, 괜찮아 이러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내일 모레 있을 면접 잘 보길 바랄 밖엔.

2. 금-토-일 연달아 저녁을 종로에서 외식. 금요일엔 친구 H와 굴짬뽕으로 유명한 모 중국집에서 먹었고, 토요일엔 룸메이트와 해물떡찜 0710에서 떡찜 먹었고, 일요일엔 친구 P와 함께 세종문화회관 옆쪽에서 바지락칼국수 먹었다. 종로에 나가면 어디서 먹을까 궁리하다가 곧잘 머릿속이 멍해져서, 따로 정해놓고 가지 않으면 헤매기 일쑤.

그 동네는 도통, 비싸기만 하지 맛있는 곳은 없다는 편견 아닌 편견 탓이다(술 먹을 때 말고). 물론 종로에도 맛있고 유명한 가게는 있기 마련인데,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곧잘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종로로 나갈 때마다 생각나는 건 명동의 하동관 아니면 을지로3가의 동경우동 정도.

3. 근대 서울에 꽂힌 친구 H는 서점에 가서도 근대 초기(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서울의 모던한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었다. 방송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근대 서울의 '모던보이'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건 아닐까. 단순히 상품의 레벨을 넘어서, 근대 조선과 경성이 담지하고 있던 동-서양 문화의 통섭, 교접, 문화적 잡종이 구한말의 혼란과 일제의 억압과 공존했다는 시대적 모순에 겹쳐 묘한 시너지를 낳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근대 조선에는 아직까지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4. 그럼에도 종로는 시대가 중첩되는 독특한 공간으로서 꾸준히 유지되어야 하는 공간이라고 믿고 있다. 구한말-일제 초에 지어진 근대풍의 벽돌양식이 21세기형 복합건축과 양립하고 그 사이에 옛 왕조의 흔적이 아련히 남아있는 서울 한복판에는 독특한 멋이 있다. 종로와 인사동 골목 사이사이에 들어선 3,40년 전통의 먹거리 가게들도 정겹다. 치지직 생선굽는 냄새가 저녁시간을 알리고, 노란 전구가 불을 밝히면 탁자 위에 소주를 세워두고 오랜 친구와 노닥거리며 술을 마시는 그 공간들이 멋스럽다.

굳이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문화도시가 바로 이런 것일텐데, 뉴타운, 재개발 따위의 허상에 사로잡혀 21세기형 신도시 건설에 집착하는 문화적 천박함이 부박할 따름이다.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보수적인 것이 오히려 진보가 되는 역설이 성립하는 시공간이 바로 종로일 것이다.

5. 점심도 먹지 않고 알바를 찾아서 이제 저녁을 해먹어야겠는데, 오늘은 또다시 닭가슴살 카레나 해먹을까. 이제 냉동팩도 2개 밖엔 남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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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耿君 2008/12/29 23:47 # 답글

    요즘 서점에서 '모던' 바람에 부응하는 책들을 많이 볼 수 있더군요.
  • leopord 2008/12/30 00:37 #

    유행도 있고, 그만큼 시대가 '모던'을 이야기할만큼 자유로워진 게 큰 것 같습니다.ㅎ
  • Hendrix 2008/12/30 00:18 # 삭제 답글

    그러게.. 좀 내뻐려두지... -_-;
  • leopord 2008/12/30 00:37 #

    응. 그러게나 말이다.
  • Mitena 2008/12/30 01:12 # 답글

    2&5. 닭가슴살 카레 +ㅁ+ 사실 오늘 하루종일 동경우동의 카레우동이 먹고싶었는데 같이 먹으러 갈 사람이 없어서 꾸욱 참았지...;ㅁ; 나 혼자선 밥 못먹는지라;;;
    4. 그 역설이 또다른방식으로 역설이 되는 곳은 경복궁역근처더군 ㅎㅎ
  • leopord 2008/12/30 01:23 #

    동경우동 갈꺼면 언제든지 콜이다.ㅋㅋ

    솔직히 경복궁역 근처 공사하는 건 좀 그렇더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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