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랴 : 이동걸 금융연구원장 사임에 대한 단상 현실정치비판

"경제 전망치 정부가 간섭"
(경향신문 1월 29일자 기사)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실패의 원인을 정책의 오류에서 찾기보다는 홍보와 IR에서 찾는 현 정부의 상황 판단 앞에서, 잘된 것은 모두 내 탓이요 잘못된 것은 모두 네 탓이라고 보는 현 정부의 인식 앞에서, 결정은 내가 할테니 너희들은 그저 일사불란하게 따라오기만 하라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사고방식 앞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비판의 잘 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현 정부의 갈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동걸 원장 : 이임사를 대신하여)


엊그제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다가 이동걸 금융연구원장 사임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그는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에 대한 비판자였고, 그 때문에 07년 7월 한국금융연구원장직 취임 이래 이명박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인 윤증현과의 불편한 관계도 사임을 강요하는 요인이었을 거라는 얘기가 있다. 04년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이동걸 씨가 윤증현이 금융감독위원장으로 부임한지 1달만에 사퇴했어야 했던 전례도 심상치 않다. 윤증현은 노무현 정부 당시 독보적인 시장주의자로 알려져 있었다.

이동걸 전 금융위원장과 같은 금융학자들은 완전히 시장주의자라고 볼 수도 없고, 완전히 케인즈주의자라고도 볼 수 없다. 많은 경우 이들 사이의 절충주의자이며, 그만큼 시장을 보는 시각도 나름 균형잡혀있다. 금산분리완화로 인한 재벌의 은행소유는 금융시장의 대운하와도 같다는 지적은 적절하다. 이미 증권사와 보험사가 재벌의 아래에 있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그렇게도 시장주의자들이 말하는 시장의 자율성에 상당히 부합한다. 글쓴이가 지난 학기 자본시장이론 수업을 들을 때에도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세계에서 금융시장이 가장 개방되어있는 곳이 어딘지 아세요? 우리나라예요. 파생금융상품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그것도 우리나라지요." 여기서 더 개방하게 되면 은행은 재벌이 자기 필요에 따라 돈을 갖다쓰는 돈창고에 지나지 않게 된다. 기득권계층은 이미 존재하는 재벌-은행 카르텔만으로는 부족한가?

이동걸의 퇴임은 경제·금융 및 연구분야에서의 정부의 독단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모든 연구기관의 이상향이고 실제로 구현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정부의 이념/정책노선의 노예가 되어서는 그 존재가치를 잃기 쉽게 마련이다. 연구원이 정부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대체 싱크탱크가 왜 필요한가? 그리고 집권당이 바뀜으로써 정부의 이념성격도 바뀌는 민주주의 정치의 특성상, 특정 정당이나 집단에 유·불리한 연구를 발표한다고 해서 연구원에 압력을 넣는다는 것은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키는 커녕 방해하기 십상이다. 모든 논리는 그 반대논리와의 대립과 충돌로 성장해나간다는 걸 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다. 이래서는 연구기관의 연구역량 및 사기저하를 불러올 뿐이다. 이명박과 집권세력에게는 머리가 필요없다는 하나의 반증이 될 것이다.

한편 경제성장지표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자. 보통 경제 내지는 경제학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적인 기준과 수단을 동원하여 체계에 바탕을 둔 데이터를 제시하기 때문에, 경제학은 따분할지는 몰라도 신뢰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요즘은 하도 속임수가 많아서 일부러 안 속으려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분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러나 수치란 쉽게 사람들을 농락할 수 있다. 가까운 예로 S&P나 무디스의 신용평가도를 떠올려보자. 신용평가사들이 파생금융상품과 불량모기지에 대해 내놓은 과장된 신용평가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필두로 하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단초가 되었지 않았는가. 그들의 뒤에는 파생금융상품으로 고수익의 실적을 기대하던 초국적 자본과 투기회사가 있었고 말이다.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정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연구원은 정부로부터 09년도 경제성장전망치를 1.7%에서 2.0% 안팎으로 높일 것을 요구받았다. 경향신문은 한국개발연구원(KDI)와 한국은행 등 역시 비슷한 압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타기관에도 '성장률 압력' 가능성) '2009년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0.2%로 잡은 삼성증권이 보고서 수정·보완을 이유로 보고서를 인터넷에서 삭제한 해프닝도 의혹을 가중시킨다. 이렇게 경제성장지표를 조작하려는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가깝게는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려는 것이고,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흔들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속셈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속이는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속임수는 사람들에게 잠깐의 위안을 줄지 모르나 발각되고 나면 더욱 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하다못해 지금 당장 경제성장률이 3%대라고 주장한들 실물경제가 이모양인데 누가 믿어줄까? 그리고 믿는들 무슨 힘이 날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랴. 이명박 정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모두가 보고 있는 것을 자기는 보이지 않으니 그것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건 멍청한 것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가 보이는 전형적인 태도다. 언론악법을 추진하면서도 "정권의 방송장악은 없다"고 말하고, 강만수 전 장관 등 회전문 인사비판에도 "어떤 분이 있느냐"고 되려 반문하지 않는가. (이 대통령, 정책실패 지적에 '이해부족'...'MB국정' 일방 홍보)

말을 해도 들어먹지를 않으니 방법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정권을 바꿔야 한다. 물론 합법적인 수단으로. 올해 재·보궐 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는 흔히들 하는 정치적 레토릭임에도 불구하고 심판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2012년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통해 정권을 확실히 갈아치우는 수밖에 없다. 자기 무덤을 열심히 파고 있는 이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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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opord의 무한회귀 : 정권의 도덕불감증과 시민의 만성피로감 2009-02-14 14:57:36 #

    ... 긴 하지만...). 이 사건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그 이전의 다른 사건들과의 연관성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달의 미네르바 구속을 떠올려보자. 정부의 금산분리완화에 비판적이었던 이동걸 금융위원장의 사퇴는 또 어떨까. 정부에 연일 비판적인 우석훈에게 "이런 식으로 쓰지 마라"고 언로를 차단하려드는 정부는? 우석훈은 아예 마음을 비운 것 같다. 모르겠다... 감옥 보내 ... more

덧글

  • 안셀 2009/01/31 13:27 # 답글

    그런데 또 손바닥으로만 가려도 하늘을 못 보는, 안 보는 분들이 많다는 게 안습입니다..-_-;;
  • leopord 2009/02/01 10:20 #

    똑같은 포즈를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하는 꿈☆은 이루어진걸까요?? -_-;;;
  • tore 2009/01/31 13:33 # 답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순 없지요. 다만 남의 눈을 가리긴 쉽...(어째 포인트가 빗나간듯한)
  • leopord 2009/02/01 10:21 #

    아하! 그런 방법이! (엥?)
  • 자유로픈 2009/01/31 18:39 # 답글

    전문을 읽어보면 논조가 상당히 강경하더군요. 제가 아는 어떤 선배는 이 사람 잡혀가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할 정도...이러한 진심어린 충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 대놓고 제 갈 길 가겠다는 말을 하고있으니 가슴이 참 무겁습니다...
  • leopord 2009/02/01 10:21 #

    더 염려되는 건 이제 저런 말이 나오면 당연히 잡혀가겠지 라고 체념하게 되는 지금 이 순간인 것 같습니다. 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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