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공감과 정치 얘기 무한회귀의 주인장

0. 어디까지나 잡담.

1. 언젠가 신복룡 교수는 수업시간에 역사학에 있어 접근하기 매우 난해한 세 가지를 얘기한 적이 있다. 첫번째는 집안 문제였는데, 나머지 두 개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기억 나지 않는 둘 중 하나는 정치가 아닐까 싶다.

2. 정치 얘기는 언제 어디서 해도 까다롭다. 일단 신경부터 예민해진다. 정치 얘기라면 생리학적 거부를 보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얘기를 꺼리지 않는 경우부터 대화가 시작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빌려오면, 거기서부터 몰락이 시작된다. 일단 어떤 단체, 조직 혹은 입장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리고 그 단체, 조직 혹은 입장에 손상을 입히거나 반대하는 얘기가 나오면 "그건 아니지..."가 되는 거고, 일치하거나 비슷하다 싶으면 "네가 맞다"가 된다(더 발전하면 "우리가 맞다"가 된다.). 많은 경우 전자의 예를 따르고, 논쟁이 벌어진다. 이 논쟁은 좀체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좋게 좋게 끝내자가 되고, 가끔씩은 주먹다짐도 벌어진다. 어떻게 해도 결론은 똑같다.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걸로.

3. 정치 얘기를 하는 걸로 얻을 수 있는 효용과 하지 않는 걸로 얻을 수 있는 효용 사이의 양적 차이가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더 효용이 높은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현시창?).

4. 지난 번 포스팅에서 폴라니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소개만 한 것 같다. 사실 이 논의는 진행형이다. 공정무역도, 사회적 기업도. 생활협동조합은 80년대 민주화 항쟁 이후에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풀뿌리 운동이지만 여전히 그 입지는 협소하다. 결정적으로 전지구적인 경제위기와 우리나라의 재정난이 앞길을 어둡게 한다. 쉽게 낙관할 수 없는 일이다.

5. 폴라니에 대해 앞으로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리라 기대할 수 있는 건, 폴라니는 전통적 우파와 좌파 모두 소화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사회체제를 파괴하지 않고 점진적인 변화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에게 친근하고, 거대산업과 금융자본에 반대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에 좌파에게 더없이 유효하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폴라니를 사이에 두고 우파와 좌파 사이의 해석 차이로 인한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질지 모른다. 이런 논쟁이 가능한 결정적인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안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이 설명되지 않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요컨대 '어떻게'다.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도, 개량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도 수용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싸울 수 있는 지점도 많다. 하지만 공통의 화제로 대화와 소통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기존의 좌파와 우파 사이의 구분이 더욱 옅어지는 지점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6. 이글루 뿐만 아니라 다른 곳의 유명 블로거(민노씨, periskop김우재capcold 등. 김우재 님은 본인은 아니라고 하실지 모르지만;)의 글을 보면 이제 블로그 담론은 지성사 내지는 지식사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한글 블로그에 맴도는 언어적 한계 때문이겠지만, 적어도 국내 블로그에서 느껴지는 흐름은 그렇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교류하고 충돌하다 보니 물리학자와 역사학자, 경제학자와 소설가가 만나 대화하고 반대하고 격려하게 된다. 그야말로 통섭의 시대다. 그런데 여기서 학문의 어떤 지점이 서로 통섭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자칫하면 유사과학 담론에 휩쓸리기 쉬운 것이다. 난 김대호 님의 글이 그런 오류에 빠져있지 않은가 걱정된다. 집단지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워진다. 설령 지금 상태를 집단지성으로 부를 수 있을지라도, 이에 대한 판단은 성급히 내릴 게 못 된다. 적어도 4년은 지나야, 즉, 이명박 정부가 끝나고 현재의 전지구적 경제위기가 회복될 때쯤에나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근데 정말 4년 정도 지나면 회복될 수 있을까요?).

7. 위에선 정치 얘기 하는 것을 회의했는데, 그럼에도 정치 얘기를 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자기 얘기니까. 이오공감에서 진보보수좌빨수꼴 하면서 물어뜯는다고 비난받는다 해도, 이 정도 갈등은 표출되는 편이 그렇지 않고 부글부글 잠재해 있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8. 어쨌든 오늘은 토요일. 모두들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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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한단인 2009/03/28 18:32 # 답글

    6번의 경우는 참 흥미로운 듯.. 저 자신도 그 이전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과학 분야나 문학, 철학에 요 1년간 부단히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바로 블로그였으니까요. 3류 역덕의 틀을 조금이라도 탈피하게 된 계기가 되긴 한 듯..

    하기사 3류 역덕이 복잡계가 무슨 말인지 관심이나 둘 일이 있겠습니까? 2~3년 전과 비하면 괄목할 일이긴 한 듯..
  • leopord 2009/03/28 19:32 #

    꼭 학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취미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접촉하다 보니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뭐, 사람은 살아가는 거고 그렇게 충돌하면서 조금씩은 나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ㅎ
  • 소시민 2009/03/28 18:33 # 답글

    4. 저도 한겨레 21의 폴라니 기사를 봤는데 거기서 나온 우석훈씨 등의 대담에서 언급됬듯이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계속 채워나가야 할것 같습니다. 폴라니가 떠난지 5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이런 얘

    기가 나오는 걸 보면 사회구조를 규정하는 패러다임의 교체는 정말 오랜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듯 합니다.
  • leopord 2009/03/28 19:36 #

    하나의 사상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그 힘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야할까요?ㅎㅎ; 전 변화가 반드시 점진적으로 오지만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폴라니는 계속 지켜봐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 2009/03/28 19:0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opord 2009/03/28 19:36 #

    흑흑 저도 알려드리고 싶어도 능력도 후달리고orz
    알고 있다고 해도 말하면 잡혀가고orz
    흑흑 저도 슬퍼연orz
  • 耿君 2009/03/28 19:55 # 답글

    6. 전 시대의 흐름과는 다르게 OTL
  • leopord 2009/03/28 20:15 #

    아니 일본사 블로그의 지평을 열고 계시는(음?;) 경군 님이 이러심 곤란합니다...orz
  • ghistory 2009/03/28 20:22 # 답글

    집안 문제라면 씨족 문중이 남아있는 역사적 인물들에게 비판적 평가를 감행했을 때의 불상사와 후폭풍을 말함입니까?
  • leopord 2009/03/28 21:02 #

    네 그렇습니다. (...)
  • leopord 2009/03/28 22:01 #

    여기에 친일 및 부역혐의(?)가 있는 집안도 포함됩니다.-_-;;;
  • highenough 2009/03/28 21:53 # 답글

    그래서 원래 정치학 전공생들이 현실정치 얘기를 더 안 하죠.
    그래서 정치외면학과라능..(..)
  • leopord 2009/03/28 22:02 #

    저도 정치외면학과인데 학과의 전통에 따라 열심히 외면하지는... 못하고 있었;;;
  • hislove 2009/03/28 22:52 # 답글

    아마도 정치 이야기와 종교 이아기이겠지요. (한숨)
  • leopord 2009/03/29 01:39 #

    그런 거 같군요-_-;;;
  • stcat 2009/03/28 23:49 # 답글

    토요일은 집회날일뿐
  • leopord 2009/03/29 01:39 #

    넵; 못 가서 죄송;;;
  • 2009/04/03 04:49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opord 2009/04/03 23:37 #

    신 교수님도 강의 시간에 종종 통사의 부재를 안타까워 하셨죠. 그래서 정치사 혹은 역사를 전공할 사람이 있다면 꼭 통사에 도전해 보라고 조언하곤 하셨습니다.

    블로그의 역할과 전망에 대해 깔끔하게 말씀해 주셔서 저는 당분간 첨가할 말도 없네요.ㅎㅎ 저야말로 블로그를 하면서 여러 분들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포스팅에서 언급한 지성사(지식사)는 블로깅을 너무 아카데믹하게 해석한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만, 열정적인 블로거들 사이의 지식교류가 그만큼 인상 깊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ㅎㅎ

    니체의 저 문구는 그냥 인용이고, 직관이었지요. 부족한 지식을 남발한 거 같아 부끄럽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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