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돌출행동 : 구성의 오류 현실정치비판

돌출 행동을 수습하는 방법에 대하여
(노정태 포스팅)


0. 노정태의 글엔 기복이 있다. 완급이 너무 심하다. 과연 더 이상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는가 싶긴 하지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1. 시위 중이던 변호사들은 전국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더없이 좋은 기회를 자기 손으로 버리고 말았다. 그 상황에서 판사로 하여금 논쟁을 계속하도록 만들고 사건의 쟁점이 유지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중 속의 한 목소리가 "켐벨 판사는 엿이나 먹어라"고 외친 후에 ①변호사들 중 한 명이 켐벨 판사에게로 걸어나가 그들은 개인에 대한 욕설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고, ②모든 변호사가 한목소리로 "켐벨 판사는 엿이나 먹어라"고 함께 외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이 두 가지 방법 중 그 어떤 것도 실천하지 않았다. 이는 주도권이 그들에게서 판사에게로 넘어가도록 하였고, 변호사들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pp. 43-45] 사울 D. 알린스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박순성 박지우 옮김 (서울: 아르케, 2008)

노정태가 예시한 '시카고 7인 재판'은 (정치적) 행위자들이 침묵을 지킴으로 인해 빠지는 오류를 짚고 있다. 어쩌면 순발력의 문제일 수도 있는, 적극성과 능동성의 부족이 일으킨 실수라고 진단할 수 있겠다. 하지만 노정태는 이 사례를 제시할 때 비록 부록으로 달긴 했지만 변호사들이 가진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정치적 정당성을 이후의 논리전개에서 빼놓고 있다. 과연 목수정의 발언에 정당성이 부여되었던가. 오히려 정당성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를 짚어보지 않고서 말이다. 이 점에서 사울 알린스키의 예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2. 첫째, '목수정을 찍어내라, 진보신당 찍어주마'라고 외치는 자들을 지지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여기서 '올바름'이란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익의 문제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진보신당은 당원들의 행동을 일일이 미시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중들에게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돌출 행동의 발생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에 속한다.

따라서 인민재판을 즐기는 자들, 비정규직 문제의 기초도 모르면서 일단 맘에 안 드는 캐릭터가 나오면 까고 보는 '소비자'들을 '마케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해가 되는 수가 있다. 견인합성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을 빌자면, '쉰 밥 먹고 체하는 수'가 있다는 말이다.

시작부터 문제가 있다. 정당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가? 당이 당원의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할 수 없듯이, 지지자의 지지여부 역시 통제할 수 없다. 결국 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지지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것 뿐이다. 결국엔 설득이다. 꽃이 나비를 꾀듯이. 서서히. 인내심을 갖고. 한편, 정서적으로 심각한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과는 결연히 맞서야 한다는 점에선 동감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싸잡아 욕하는 건 전선을 잘못 짜는 것이다. 이게 무조건 굽신거리라는 얘기가 아닌데.

3. 둘째, 목수정이 다구리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하는 진보신당의 모습은, 앞으로 소수자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충성도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미안한 말이지만, 소수자 운동은 오래 하면 할 수록 '쿨'해질 수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소외된 자신을 끝없이 확인하면서, 자신이 억압의 주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과 맨몸으로 부딪쳐야만 하는 일이 바로 소수자 운동이기 때문이다.

목수정이 이번에 보여준 '비매너'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돌출 행동'을 한 누군가를 당원들이 전혀 챙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렇듯 경험적으로 확인되면, 소수자들은 움추려들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모든 열린우리당 지지자 출신 진보신당 당원들을 폄하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모든 소수자 운동 당사자들이 돌출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저들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휘두르게 내버려둔다'는 전략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고 있을 따름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학적인 행동을 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털릴 때까지 털리겠다, 참는 자가 이기는 자다, 이런 식의 대응은 당위적으로도 또 전략적으로도 옳지 않다.

소수자 운동은 오래할 수록 쿨해지기 어렵다는 것, 운동가 스스로 소외된 자신을 끝없이 확인해야 하는 외로운 길이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리고 소수자 운동(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의 입장에 서면 목수정의 발언과 행동도 이해가능하다. 이들을 당이 지켜주지 못하고 공개적인 비난에 방치한다는 것은 당으로서의 책임을 버린 것이다라는 입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그러나 조심할 것이 있다. 보호하기 전에 사리분별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정태의 지금 같은 논리가 삐끗한 사례가 바로 최근에 있지 않았던가. 민주노총 성폭행 사건. 조직을 조중동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너 한 몸 희생하라. 조직논리가 운동을 배반한 대표적인 사례. 이 경우엔 정반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개인을 다수로부터 지키는 행위니까. 하지만 기본구조는 똑같다. '우리편'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선 말이다. 우리편을 지키더라도 어느 선까지 용납가능한지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정리해야 하는지는 고민해보지도 않고서.

4. 돌출 행동이 저질러지면 누군가는 수습을 해야 한다. 혹자는 목수정을 고문관에 비유하기도 하더라만, 어차피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고 고문관질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목수정을 옹호하면서도 합창단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극히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좌파란 전통적으로 반대파이고, 불쾌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건 사실이다. 흔히들 말하는 "불편하지만 그것이 진실"을 무기로 끊임없이 대중에게 정서를 환기시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좌파가 해야하는 것은 대중에게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걸 설득하는 일이지, 강요하는 일이어선 안 된다고 본다. 목수정의 언어엔 설득력이 부족했다. 거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목수정 옹호와 오페라단 연대투쟁이 병행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5. 지금 노정태의 글 자체와, 목수정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하려는 행위는 구성의 오류다. 개별 행동은 나름의 합리성을 갖고 있지만, 그 행동의 총합은 완전한 비합리로 가는 현상. 꼭 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초반 때처럼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와 미국의 소비대중과 유럽의 은행들은 시장원리의 합리성으로 움직였지만, 그것이 결국 신용경색으로 연결되고 거대 투자은행들이 연쇄도산하듯이. 특히 이것은 집단사고에 빠져있을 경우에 더 강한 경향이 있다. 그래서 조직은 외부와의 연결이 필요하고, 그들과의 긴장관계(조언과 비판)를 피해서는 안 된다. 진보신당과 블로그스피어의 관계도 그래야하지 않을까. 노정태는 이 정도의 긴장을 수용할 수 없는가.


덧 : 좀 다른 이야기. 솔직히 진보 혹은 좌파들과 만날 일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 쪽과 비판적인 입장에 선다는 것은 아무래도 손해다. 특히 이번 논쟁과 같이 민감한 사안일 경우엔 더더욱. 블로그의 영향력이 크다 해도 오프라인과는 별개다. 블로그는 멀고 사람은 가까운 법이다. 내가 무슨 대단한 책임감을 갖고 블로거를 대표한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번 케이스는 특히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허지웅은 가족은 가족에게 폭력적이라고 했다. 가끔씩, 나는 운동판도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활동가는 활동가에게 폭력적이다. 나와 나의 행동을 분리하고 객관화한다는 것, 쉽지 않다. 내가 꼭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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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4/08 22:4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opord 2009/04/08 22:55 #

    아이쿠 부끄럽습니다;; 사실 개그도 좀 하고 싶긴 하지만 이미지상 글렀고 재주도 후달리고...-_-;;; 좀 더 차분하고 또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제리 2009/04/08 22:59 # 답글

    중간고사 언제 끝나나
  • leopord 2009/04/08 23:02 #

    4월 24일...
  • 제리 2009/04/08 23:23 # 답글

    시험에 굴복한 진보주의자!...(음?)

    뭐 난 마음이 넉넉하니 시험 끝나면 13000원에 삼겹살 3인분과 소주 한 잔으로 모셔주지.
  • leopord 2009/04/09 01:05 #

    와우 가격 지대론데??? +_+;;; 사주시면 감사히... (굽신굽신;)
  • ghistory 2009/04/08 23:59 # 답글

    어째 제가 쓰려던 바들을 번번이 먼저 작성해서 제 수고를 덜어주고 계십니다그려.
  • leopord 2009/04/09 01:05 #

    음... 느낌이 통했?! !@#$%^&* (;;)
  • ghistory 2009/04/09 01:09 # 답글

    노정태씨는 자꾸 본인 기준으로 정치적 판단과 정치인적 판단이라는 기상천외한 기준을 창안하는데, 별로 공감할 수 없네요.막연하게 인상만으로 적어보자면 노정태씨에게는 정무적 판단능력이 많이 모자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leopord 2009/04/09 12:09 #

    정무적 판단보단 감각 자체가 떨어진다는 인상이랄까요;; 어떤 글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곧 나오는 글은 종종 무너지기도 하고. 좀 기복이 심한 거 같습니다.
  • kkkclan 2009/04/09 03:58 # 답글

    나이스샷 짝짝짝

    활동가는 활동가에게 폭력적이죠. 그 안에서 자신의 과실을 발견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과실을 발견하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옹호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나마 이제는 논쟁이 정리되는 듯 하네요. 이후 돌아볼 기회가 있을 때, 스스로나 판 전체를 복기해보며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도 중간고사가 메이데이 이전에는 끝나는군요 ㅎㅎ 시험 잘 보세요.
  • leopord 2009/04/09 12:11 #

    활동가는 활동가에게 폭력적이라는 것, 종종 발생하는 거 같아요. 사실 저 문장만 놓고 보면 피해자의 자리엔 목수정 님도 올 수 있고, PD가 올 수도 있고, 소수자 운동가가 올 수 있겠죠. 다만 너무나 자주 그 역관계가 성립한다는 게 문제랄까...

    여튼 여러모로 고민이 되는 논쟁이었던 거 같습니다. 역시 시간의 힘은 세요.-_-;;

    감사합니다. 시험.........OTL
  • 2009/04/09 12:2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opord 2009/04/15 16:05 #

    월세로다.ㅎ
  • 33 2009/04/09 20:27 # 삭제 답글


    노씨가 주장하는 내용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친구 글쓰는 재주가 정말 없네요

    나름 신문에 컬럼도 기고하고 기대되는 젊은 논객 소리도

    듣는걸로 알고있는데 요 바닥은 인재가 그렇게 없단 말입니까
  • leopord 2009/04/15 16:06 #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에 경향신문에 컬럼도 보내고, 진중권 씨에게서 20대 논객 3인방(김현진, 한윤형, 노정태)으로 꼽히기도 했는데... 노정태 님 글은 불안정한 감이 많습니다;
  • 들꽃향기 2009/04/15 08:53 # 답글

    전 노정태란 분에 대해서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만, 이분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이런 사람이 스스로 진보라고 평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순히 대중과 대중문화에 대한 경멸에 이어서, 자파 비호적 사고방식도 그렇지만, leopord님께서 인용하신 문장 가운데에서 '사람들의 충성도' 운운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좀 지나친 생각일지 모르지만 대중들을 하나의 주체자로 보는 이라면 충성도 대신에 '참여도', '헌신성'등의 용어를 썼겠죠. 이런 용어선택은 마치 조직이 있고 그 아래 구성원이 보여야 할 당연한 '도리'를 염두에 두고, 그에 따라 '충성'이란 단어로 체현된 것이 아닐까 싶네요.

  • leopord 2009/04/15 16:09 #

    하지만 논객의 활동범위라는 게 결국엔 글쓰기이고, 스스로는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충성'하지 않아야 하는, 비판적인 입장에 있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용어를 잘못 선택하긴 했는데, 이건 노정태 님의 무의식의 표출이라기보단 "적어도 나는 참여를 하고 있다"는 단순한 자의식의 표출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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