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촛불집회는 성공할 수 없다.
(김우측 님 포스팅)
0. 피곤해서 하루종일 누워있었더니 타이밍은 놓쳤지만.
1. (존칭생략) 김우측의 <2009년의 촛불집회는 성공할 수 없다>는 보수주의자의 비판적인 조언처럼 들린다. 우선 2008년의 촛불집회를 '절반의 승리(패배)'로 평가한 뒤, 지난 노동절 집회와 촛불 1주년 집회의 겉으로 보여지는 상황을 통해 올해 촛불집회의 전망을 관측한다. 요점은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시위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장기적이고 유효한 시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명분과 집시법 개정 둘 다 필요한데 둘 중 하나라도 달성불가능하니 (대규모) 시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글은 집회와 시위, 더 나아가 법의 제정과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계적이고 결과론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요컨대 조언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결국 아무런 시위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 논의를 위해 그가 빌려온 무기는 sonnet의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 중 국민투표 부분이다. 김우측은 이명박 대통령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권한을 위임받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할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이명박을 퇴진시키라는 주장은 민주주의의 예의에도 어긋나고, 대단히 잘못된 행동, 어린애의 행동, 정당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간주한다. 그렇다면 하나하나 비판해보자.
우선 sonnet은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에서 몇 가지 지점들을 간과하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규정부터 그렇다.
일단 도시국가 대신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권리를 가진 시민의 수가 훨씬 많아졌다. 따라서 이들이 모두 일상적인 토론과 정책결정이 참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또한 사회가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에 각 부문의 의사결정에 전문지식을 연마한 전문가들의 필요성이 폭증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대표를 뽑아 대표들에게 의사결정 권리를 위임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다.
중고딩 때 도덕·윤리 수업을 들은 분들이라면 어렴풋이 이런 문장이 기억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엔 핵심적인 개념이 빠져있다. 바로 계급 Class이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계급 얘기 하냐고? 하지만 이 인용문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계급 개념부터 탑재해야 한다. 이런 대의제 민주주의의 계기 중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은 1789년 이후의 프랑스 대혁명이다. 나폴레옹의 제정을 거쳐 왕정과 공화정을 반복한 기간 동안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이 벌어졌다는 것도 기억날게다. 이 때의 투쟁은 무엇을 둘러싼 것이었을까? 바로 산업자본계급의 경제적 권리 : 자유로운 이윤획득이었다. 이 권리는 그들이 통치할 수 있는 형태의 정치체제와 함께 할 때 비로소 안전할 수 있었다.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토지귀족(지주)계급이 몰락하고 자본계급이 부상하는 역사적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대의제 민주주의는 적어도 현재까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유럽적인(더 개별적으로는 프랑스적인) 것이다. 토지귀족-자본가-노동자 간의 경쟁과 대립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뤘던(비록 노동계급의 부상은 19세기 말에 가서야 가능했지만) 영국과도, 토지귀족 없이 노동-자본 관계가 존재했던 미국과도 다르다. 여기서 영미 정치학의 특징이 튀어나온다. 특히 미국 정치학이 그런데, sonnet의 대의 민주주의 규정은 다분히 미국적인 것이다. 즉, 미국의 대의 민주주의 개념은 그 사회의 계급 개념이 뚜렷하지 않은 것(더 정확하게는 지주계급이 부재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계급의 부재가 다른 계급 사이의 차이를 가려버린 셈이다.
2. 그렇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보자. 대표를 뽑아 이들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는 어째서 다수대중을 배제하는 형태를 띄게 되었을까? sonnet이 소개하는 바와 같이 정치참여 구성원의 수가 늘어나고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전문가집단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설명은 옳다. 실증적으로 그렇다. 동시에 이는 표면적인 이유다. 실질적으로는 다수의 개입을 차단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이익과 안전을 보장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닥에 깔려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부터다. 계급과 계급 사이의 대립(미국은 인종과 인종 사이의 대립이 더 강렬하다.)은 필연이다. 어떤 지배적인 계급(인종)도 그렇지 않은 계급(인종)에게 거저 권리를 나눠주지 않는다.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과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은 차별의 원인일까, 결과일까?
하지만 미국에 대한 인식에 부분적으로 깔려있는 음모론에 동조할 생각 따윈 조금도 없으니 염려마시길(프리메이슨이야 있던 말던 :P).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는 비록 그 시작이 19세기 부르주아 민주주의였다 하더라도, 수많은 계급투쟁과 전쟁(1,2차 세계대전), 역사적 대타협(복지국가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다수의 참여를 보장하는 쪽으로 확장되어 왔다(일련의 순간들이 역사의 진보를 증명하진 않지만.). 여기서 잠시 국민투표에 대한 sonnet의 주장을 읽어보자.
답은 처음부터 사안을 잘 알지 못하거나 감정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변덕스러운 국민의 의사에 휘둘리거나 하는 일이 적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민주정를 위협하는 두가지 위협은 독재정과 중우정치이다. 3권분립 같은 견제와 균형 장치는 독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대의민주주의나 관료제는 중우정치의 영향을 걸러주도록 설계된 것이다.
민주정에 대한 두 가지 위협-독재와 중우정-을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 삼권분립과 대의제·관료제라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옳다. 미국식 양당제·대통령 간선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그렇다. 또, 이 중우정을 방지한다는 명분은 민주주의 자체가 본질적으로 불안한 균형을 포함하고 있다는 걸,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 자체는 다수의 참여를 원초적으로 보장하는 고정된 제도가 아니라, 다수의 개입과 투쟁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는 역동적인 삶이라고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란 결과를 포함한 과정 그 자체다. 제도를 포함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는 것이다. sonnet 자신도 민주주의가 불안정한 균형을 갖고 있는 제도라는 데에 일부 공감하지만,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민주주의란 제도적이고 기술적인 데에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입장은 민주주의적이라기보다는 기술관료적(테크노크라시)이라는 의심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sonnet의 현실주의적 민주주의 이론은 다분히 미국적이며 기술적 분석의 강점과 허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의 민주주의 이론은 유효하나, 민주주의 자체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의 한계가 있다.
3. 인용문에 대한 비판은 이쯤 해두고 이제 김우측의 글에 대해 들어가보자. 우선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는 부당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 이는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례가 있는데, 바로 전 미국 대통령 부시다. 물론 퇴진하라 퇴진하라 요구해도 부시는 퇴진하지 않았다. 퇴진하라는 말에는 법적효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퇴진 구호는 상징이고 기호다. 나라가 왜 이 모양이냐는 강력한 불만과 제대로 하라는 요구의 표현이다. 이 점에선 이택광이 <모든 것은 이명박 탓인가?>에서 적절히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모든 것을 ‘이명박 탓’으로 돌리는 논리는 겉보기와 다르게 전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은 ‘평화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는 ‘평화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정부가 미리 미리 알아서 촛불을 든 시민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그 마음을 헤아려서 공동체의 안정을 보장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말하자면, 정부는 더욱 많은 ‘권력’을 가질 필요가 있고, 그래서 시민들의 제몫을 적절하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게 바로 촛불의 시민들이 그토록 원했던 ‘소통’이었지 않을까? 정부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은 국가의 안전과 시민의 안정을 도모할 권력의 작용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이명박에 반대하는 주장은 '더 강한' 이명박을 요구하는 주장과 상통한다. 그가 '제대로' 권력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또, 이 지점이 촛불에 좌와 우가 뒤섞이거나, 기존의 자유주의자들이 좌파가 되는 상황이다. 그 점에서 이명박 퇴진 구호는 좌파의 전유물도 아니고 완전히 부당한 요구도 아니다(이 맥락으로 읽으면 이명박 반대 구호는 자연히 대안이 될 수 없다.). 중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는 퇴진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퇴진이라는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건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 문제도 아니고, 대단히 잘못된 행동도 아니며, 어린애 같은 말도 아니다. 좌우를 떠나서 시민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이며, 이를 어린애 우는 소리로 파악하는 것은 사태를 파악하는 본인의 인지능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4. 일반시민들의 비호응과 경찰의 진압 때문에 대규모 집회는 안 된다는 말 역시 허구다. 우선 경찰 쪽이 사전에 집회시위장소를 차단/봉쇄하여 작년과 같은 촛불시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고 있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이다. 그러나 일반시민의 호응이 없다면 시위는 도로방해에 불과하다는 논리는 경찰의 주장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08년 촛불집회 이전의 시위들은 다 어떻게 했단 말인가?(물론 정권 사이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 논의는 경찰의 조직적 진압법인 '분할하여 공략하기' Divide and Conquer의 담론재생산일 뿐이다. 물론 김우측이 경찰의 프락치라던가 그런 얘기가 아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논리로는 여기로 흘러갈 것이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2009년의 촛불집회를 위한 고언(?)이다. 그는 촛불집회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하나는 선행해야 한다고 본다.
1. 일반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주제를 일관되게 주장
2. 집시법의 개정
1번은 쉬이 판단할 수 없다. 이는 촛불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한편, 작년 촛불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더 이상 공통된 이슈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이것이 당시의 경험을 돌이켜보고 사회의 주변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공통경험이 되느냐 않느냐 이며 이건 현재진행형인 물음이다. 그래서 일반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주제란 허구이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작년과 똑같은 촛불을 밝히는 정도의 참여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2번 집시법의 개정에 대한 김우측의 논의는 지극히 모순적이다. 현실정치에서 집시법 개정을 통해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지켜야 할 의무에 소홀한 민주당(구 열린우리당)의 책임도 있지만, 한나라당이 기득권 중심의 법안상정을 벼르고 야당은 그걸 방어하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집시법 개정이든 헌법소원이든 법적인 기반부터 만들고서 촛불집회 하란 얘기는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게 그의 본심이다. 무엇이든 법으로 따지고 합법이 아니면 부당하다는 태도(법의 중요성과는 별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5. 나는 이걸 로봇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에 의거해 몇 가지 전제만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로봇처럼(이는 인간과 로봇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지만, 여기서는 하나의 은유다.), 몇 안 되는 전제에 의존해 민주주의의 원리를 통째로 규정짓는 기계적 민주주의라고 말이다. 김우측은 민주주의에 대한 sonnet의 정교한 분석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분석의 정태적 측면만 가져왔다는 점에서 또 허술하다.
김우측에게 있어 민주주의란 확고부동한 체제(그런 게 있다면) 그 이상이 아닌 것 같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의 공화주의적 원칙과, 권력이란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기계적 정의 이상의 것이다. 시민의 참여와 토론이란, 동시에 갈등과 마찰을 소통으로 해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감수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행태가 반민주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점을 간과하고서 그저 법과 제도 안에 들어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위와 집회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적이지 않다. 로봇 민주주의는 명제 하나만 엉켜도 교란되어 버리는 허술한 것이다. 김우측의 관점이 꼭 그렇다.
(김우측 님 포스팅)
0. 피곤해서 하루종일 누워있었더니 타이밍은 놓쳤지만.
1. (존칭생략) 김우측의 <2009년의 촛불집회는 성공할 수 없다>는 보수주의자의 비판적인 조언처럼 들린다. 우선 2008년의 촛불집회를 '절반의 승리(패배)'로 평가한 뒤, 지난 노동절 집회와 촛불 1주년 집회의 겉으로 보여지는 상황을 통해 올해 촛불집회의 전망을 관측한다. 요점은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시위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장기적이고 유효한 시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명분과 집시법 개정 둘 다 필요한데 둘 중 하나라도 달성불가능하니 (대규모) 시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글은 집회와 시위, 더 나아가 법의 제정과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계적이고 결과론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요컨대 조언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결국 아무런 시위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 논의를 위해 그가 빌려온 무기는 sonnet의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 중 국민투표 부분이다. 김우측은 이명박 대통령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권한을 위임받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할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이명박을 퇴진시키라는 주장은 민주주의의 예의에도 어긋나고, 대단히 잘못된 행동, 어린애의 행동, 정당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간주한다. 그렇다면 하나하나 비판해보자.
우선 sonnet은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에서 몇 가지 지점들을 간과하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규정부터 그렇다.
일단 도시국가 대신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권리를 가진 시민의 수가 훨씬 많아졌다. 따라서 이들이 모두 일상적인 토론과 정책결정이 참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또한 사회가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에 각 부문의 의사결정에 전문지식을 연마한 전문가들의 필요성이 폭증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대표를 뽑아 대표들에게 의사결정 권리를 위임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다.
중고딩 때 도덕·윤리 수업을 들은 분들이라면 어렴풋이 이런 문장이 기억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엔 핵심적인 개념이 빠져있다. 바로 계급 Class이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계급 얘기 하냐고? 하지만 이 인용문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계급 개념부터 탑재해야 한다. 이런 대의제 민주주의의 계기 중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은 1789년 이후의 프랑스 대혁명이다. 나폴레옹의 제정을 거쳐 왕정과 공화정을 반복한 기간 동안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이 벌어졌다는 것도 기억날게다. 이 때의 투쟁은 무엇을 둘러싼 것이었을까? 바로 산업자본계급의 경제적 권리 : 자유로운 이윤획득이었다. 이 권리는 그들이 통치할 수 있는 형태의 정치체제와 함께 할 때 비로소 안전할 수 있었다.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토지귀족(지주)계급이 몰락하고 자본계급이 부상하는 역사적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대의제 민주주의는 적어도 현재까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유럽적인(더 개별적으로는 프랑스적인) 것이다. 토지귀족-자본가-노동자 간의 경쟁과 대립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뤘던(비록 노동계급의 부상은 19세기 말에 가서야 가능했지만) 영국과도, 토지귀족 없이 노동-자본 관계가 존재했던 미국과도 다르다. 여기서 영미 정치학의 특징이 튀어나온다. 특히 미국 정치학이 그런데, sonnet의 대의 민주주의 규정은 다분히 미국적인 것이다. 즉, 미국의 대의 민주주의 개념은 그 사회의 계급 개념이 뚜렷하지 않은 것(더 정확하게는 지주계급이 부재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계급의 부재가 다른 계급 사이의 차이를 가려버린 셈이다.
2. 그렇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보자. 대표를 뽑아 이들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는 어째서 다수대중을 배제하는 형태를 띄게 되었을까? sonnet이 소개하는 바와 같이 정치참여 구성원의 수가 늘어나고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전문가집단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설명은 옳다. 실증적으로 그렇다. 동시에 이는 표면적인 이유다. 실질적으로는 다수의 개입을 차단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이익과 안전을 보장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닥에 깔려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부터다. 계급과 계급 사이의 대립(미국은 인종과 인종 사이의 대립이 더 강렬하다.)은 필연이다. 어떤 지배적인 계급(인종)도 그렇지 않은 계급(인종)에게 거저 권리를 나눠주지 않는다.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과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은 차별의 원인일까, 결과일까?
하지만 미국에 대한 인식에 부분적으로 깔려있는 음모론에 동조할 생각 따윈 조금도 없으니 염려마시길(프리메이슨이야 있던 말던 :P).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는 비록 그 시작이 19세기 부르주아 민주주의였다 하더라도, 수많은 계급투쟁과 전쟁(1,2차 세계대전), 역사적 대타협(복지국가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다수의 참여를 보장하는 쪽으로 확장되어 왔다(일련의 순간들이 역사의 진보를 증명하진 않지만.). 여기서 잠시 국민투표에 대한 sonnet의 주장을 읽어보자.
답은 처음부터 사안을 잘 알지 못하거나 감정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변덕스러운 국민의 의사에 휘둘리거나 하는 일이 적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민주정를 위협하는 두가지 위협은 독재정과 중우정치이다. 3권분립 같은 견제와 균형 장치는 독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대의민주주의나 관료제는 중우정치의 영향을 걸러주도록 설계된 것이다.
민주정에 대한 두 가지 위협-독재와 중우정-을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 삼권분립과 대의제·관료제라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옳다. 미국식 양당제·대통령 간선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그렇다. 또, 이 중우정을 방지한다는 명분은 민주주의 자체가 본질적으로 불안한 균형을 포함하고 있다는 걸,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 자체는 다수의 참여를 원초적으로 보장하는 고정된 제도가 아니라, 다수의 개입과 투쟁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는 역동적인 삶이라고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란 결과를 포함한 과정 그 자체다. 제도를 포함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는 것이다. sonnet 자신도 민주주의가 불안정한 균형을 갖고 있는 제도라는 데에 일부 공감하지만,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민주주의란 제도적이고 기술적인 데에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입장은 민주주의적이라기보다는 기술관료적(테크노크라시)이라는 의심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sonnet의 현실주의적 민주주의 이론은 다분히 미국적이며 기술적 분석의 강점과 허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의 민주주의 이론은 유효하나, 민주주의 자체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의 한계가 있다.
3. 인용문에 대한 비판은 이쯤 해두고 이제 김우측의 글에 대해 들어가보자. 우선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는 부당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 이는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례가 있는데, 바로 전 미국 대통령 부시다. 물론 퇴진하라 퇴진하라 요구해도 부시는 퇴진하지 않았다. 퇴진하라는 말에는 법적효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퇴진 구호는 상징이고 기호다. 나라가 왜 이 모양이냐는 강력한 불만과 제대로 하라는 요구의 표현이다. 이 점에선 이택광이 <모든 것은 이명박 탓인가?>에서 적절히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모든 것을 ‘이명박 탓’으로 돌리는 논리는 겉보기와 다르게 전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은 ‘평화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는 ‘평화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정부가 미리 미리 알아서 촛불을 든 시민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그 마음을 헤아려서 공동체의 안정을 보장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말하자면, 정부는 더욱 많은 ‘권력’을 가질 필요가 있고, 그래서 시민들의 제몫을 적절하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게 바로 촛불의 시민들이 그토록 원했던 ‘소통’이었지 않을까? 정부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은 국가의 안전과 시민의 안정을 도모할 권력의 작용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이명박에 반대하는 주장은 '더 강한' 이명박을 요구하는 주장과 상통한다. 그가 '제대로' 권력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또, 이 지점이 촛불에 좌와 우가 뒤섞이거나, 기존의 자유주의자들이 좌파가 되는 상황이다. 그 점에서 이명박 퇴진 구호는 좌파의 전유물도 아니고 완전히 부당한 요구도 아니다(이 맥락으로 읽으면 이명박 반대 구호는 자연히 대안이 될 수 없다.). 중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는 퇴진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퇴진이라는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건 민주주의에 대한 예의 문제도 아니고, 대단히 잘못된 행동도 아니며, 어린애 같은 말도 아니다. 좌우를 떠나서 시민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이며, 이를 어린애 우는 소리로 파악하는 것은 사태를 파악하는 본인의 인지능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4. 일반시민들의 비호응과 경찰의 진압 때문에 대규모 집회는 안 된다는 말 역시 허구다. 우선 경찰 쪽이 사전에 집회시위장소를 차단/봉쇄하여 작년과 같은 촛불시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고 있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이다. 그러나 일반시민의 호응이 없다면 시위는 도로방해에 불과하다는 논리는 경찰의 주장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08년 촛불집회 이전의 시위들은 다 어떻게 했단 말인가?(물론 정권 사이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 논의는 경찰의 조직적 진압법인 '분할하여 공략하기' Divide and Conquer의 담론재생산일 뿐이다. 물론 김우측이 경찰의 프락치라던가 그런 얘기가 아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논리로는 여기로 흘러갈 것이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2009년의 촛불집회를 위한 고언(?)이다. 그는 촛불집회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하나는 선행해야 한다고 본다.
1. 일반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주제를 일관되게 주장
2. 집시법의 개정
1번은 쉬이 판단할 수 없다. 이는 촛불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한편, 작년 촛불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더 이상 공통된 이슈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이것이 당시의 경험을 돌이켜보고 사회의 주변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공통경험이 되느냐 않느냐 이며 이건 현재진행형인 물음이다. 그래서 일반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주제란 허구이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작년과 똑같은 촛불을 밝히는 정도의 참여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2번 집시법의 개정에 대한 김우측의 논의는 지극히 모순적이다. 현실정치에서 집시법 개정을 통해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지켜야 할 의무에 소홀한 민주당(구 열린우리당)의 책임도 있지만, 한나라당이 기득권 중심의 법안상정을 벼르고 야당은 그걸 방어하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집시법 개정이든 헌법소원이든 법적인 기반부터 만들고서 촛불집회 하란 얘기는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게 그의 본심이다. 무엇이든 법으로 따지고 합법이 아니면 부당하다는 태도(법의 중요성과는 별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5. 나는 이걸 로봇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에 의거해 몇 가지 전제만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로봇처럼(이는 인간과 로봇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지만, 여기서는 하나의 은유다.), 몇 안 되는 전제에 의존해 민주주의의 원리를 통째로 규정짓는 기계적 민주주의라고 말이다. 김우측은 민주주의에 대한 sonnet의 정교한 분석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분석의 정태적 측면만 가져왔다는 점에서 또 허술하다.
김우측에게 있어 민주주의란 확고부동한 체제(그런 게 있다면) 그 이상이 아닌 것 같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의 공화주의적 원칙과, 권력이란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기계적 정의 이상의 것이다. 시민의 참여와 토론이란, 동시에 갈등과 마찰을 소통으로 해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감수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행태가 반민주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점을 간과하고서 그저 법과 제도 안에 들어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위와 집회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적이지 않다. 로봇 민주주의는 명제 하나만 엉켜도 교란되어 버리는 허술한 것이다. 김우측의 관점이 꼭 그렇다.












덧글
명랑이 2009/05/05 12:35 # 답글
애초에 민주주의가 왕의 목을 따면서 시작되었다는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요, 새삼스럽지만.그리고 대부분의 민주헌법에(한국이 아니므로) 국민의 저항권을, 어떤 경우에는 무장저항의 권리를 명시하였다는 것도 생각할 꼭지입니다.
그렇습니다 2009/05/05 14:31 # 삭제
이명박이 왕이냐?국개들이 뽑은 대통령이라 왕으로 보인다디?
나인테일 2009/05/05 16:35 #
//그렇습니다왕도 쥐뿔도 아니라면 더더욱.
leopord 2009/05/05 20:33 #
명랑이 님// 미국 수정헌법을 잘 못 봐서 확언할 순 없지만 무장저항권은 그 쪽에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드네요.ㅎㅎ;
kkkclan 2009/05/05 13:45 # 답글
집시법의 개정과는 별개로, 안정적인 집회공간의 확보는 집회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요즘같은 상황이라야... 답이 업뜸
자유로픈 2009/05/05 14:50 #
저는 요 며칠 간 있었던 경찰의 행태를 보면서, 대학 내에 전경들이 상주하면서 집회가 벌어지자마자 수 분 내에 깔끔하게 진압해버리곤 하던 그때 그 시절을 연상했습니다. 화물연대 노동자 박종태 씨의 가슴아픈 일이나 용산참사를 미루어봐도......지금의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적 규율사회(예전에는 반공적 규율사회였다지만)로 진입해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leopord 2009/05/05 20:35 #
kkkclan 님// 그렇다고 여기서만 집회하시오! 이래버리면 또 가서 하기가 난감한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집회의 쇼핑몰화라고나 할까요.ㅎㅎ;;자유로픈 님// 신자유주의적 규율사회라는 말씀은 좀 모호한 거 같습니다. 신자유주의가 그만큼 복합적인 개념인탓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경찰들은 요즘 너무 힘세고 오래가는 거 같아요-_-;;
kkkclan 2009/05/05 21:16 #
어우 그 집회전용공간 말씀하시는건지 ㅋㅋ 거기 완전 감옥이던데요 ㅋㅋ예전에 한강의 어느 섬에 .. 밤섬인가 어딘가 집회전용공간이 지정됬었는데, 지금도 그대로일 겁니다만... ㅋㅋ 장난 아니었다는. 이건 법으로 어떻게 할 문제는 아닌 듯.
leopord 2009/05/05 21:34 #
말씀하신 그 사례는 몰랐는데요?^^; 한강의 어느 섬이면... 이건 뭐 김씨표류기도 아니고--;;;
넴가1021 2009/05/05 13:50 # 삭제 답글
현재 미국에서 도입된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완결형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문제는 이게 미국 내에선 진행형이며 모든 식자들이 보다 나은 체제를 위해 연구하며
토론중이라는거죠... 그것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야 한다는걸 주장 하면서 독자들을
가르치려 드는걸 보면 자기가 가진 섯부른 지식을 가지고 잘난척 하는 오만함으로
밖에 안 보입니다.
또한 시위에 대한 발언도 참가자들이 정치인들이 아닌 이상 일반 대중들에게 와이드한 서포트를
얻는게 목표가 아닌 시위 자체로 자신을 표현 하는 '선전'의 목적인 이상... 김우측님의 발언은
돌려서 자기 불만 표현을 하는걸로만 보입니다. 애초에 글의 초점이 틀렸어요... 민주주의 안에서
시위 수준은 어느정도 보장을 해야 하냐 라는 쪽으로 주장을 펼쳐야 하는데 시위 자체의 실효성을
부정하는 쪽으로 잡았으니....=_=;;; 너무 고난이도의 정치 공학을 생각 하신 나머지 기본 민주주의
원리를 잊어 버리신거 같습니다.
거기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체제를 미국과 비교해서 제도적 측면으로 바라보기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 애초에 작은 모임에서 부터 시작해서 서로간의 동의를 얻으면서 시스템 적으로 국민의
동의하에 만들어지고 보안이 된 미국 공화정 체제하고 다르게 대한민국 공화정 체제는 태생이
범 국민적 의견으로 만들어진 체제가 아닌 미국이라는 나라의 상당한 입김과 소수의 기득권 층에게
의해서 만들어진 체제가 아닙니까? 거기다 중간엔 전쟁과 독제체제를 맞아서 그나마 엉망이
되어 버렸구요... 결국 상당한 법 집행이 원칙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주관적이고 관습적인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법 테두리 안에서 모든걸 이뤄내야 한다는건
너무 무리라 생각이 듭니다.
다만 현재의 대한민국 체제 안에서 자신의 의견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을 하고 목표를 이뤄낼지는 계속 고민을 해봐야 할거 같습니다.
leopord 2009/05/05 20:44 #
1. sonnet 님과 김우측 님의 글 모두 미국식 민주주의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진 않았답니다.^^; 다만 그 분들의 글이 깔고 있는 전제를 추적해 보면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나온다는 것이었고요.2. 민주주의 안에서 시위 수준은 어느 정도 보장을 해야 하나 쪽으로 잡힌 주장이었다면 훨씬 나았을 거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3. 정치학적으로 미국 민주주의는 흥미로운 주제죠. 그에 비판적이고 영미 민주주의 중심적인 정치학이 껄끄럽긴 하지만, A.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비롯해서 차근차근히 미국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답니다.ㅎㅎ;
4.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제도를 미국의 개입과 기득권의 발호로만 해석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비록 명목상이긴 해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률을 계승했다고 하고 그 부분들을 참조했으며(여기에 쑨원의 삼민주의가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합니다.), 헌법상으로는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상을 나름 적절하게 수용했다고 볼 수 있거든요. 박정희는 이걸 교묘하게 활용했고, 전두환은 무식하게 밀어붙였다는 차이가 있기도 하고요.
5. 말씀하신 효과적인 자기표현 문제는 단순히 정치체제 뿐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의 욕망과 의지와도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중권은 사람들에게 한나라당이라도 좋으니 정당에 가입하라고 했다고 보구요.
kane0083 2009/05/05 14:21 # 답글
이제야 그의 관점이 좀 이해가 가는것 같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그런데 로봇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게, 이율배반이 지나쳐요;
http://kane0083.egloos.com/4130980 에서 다뤘습니다.
leopord 2009/05/05 20:46 #
원문에 트랙백된 글 읽을 때 같이 봤답니다. 오히려 김우측 님은 입장은 확고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표현에 뭔가 애로사항이...(...)
我行行 2009/05/05 14:42 # 답글
광우종말교의 부흥집회를 국민이 게속 용인해야 합니까?
볼프 2009/05/05 14:47 #
옛다 관심 :)
넴가1021 2009/05/05 14:50 # 삭제
촛불시위가 종교 예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일단 민주주의 원칙에
1. 집회이 자유가 있고
2. 종교의 자유가 있는 이상
용인해야 합니다. 안 용인하면 님 공산당입니다...
들꽃향기 2009/05/05 15:11 #
어익후 이런 스탈린주의.
키시야스 2009/05/05 15:21 #
광우병안전론교가 대놓고 득세하며 언론에까지 편향적 영향을 미치려 하죠?적어도 광우병 위험론은 광우병 안전론보다 훨씬 과학적입니다.
나이쑤 2009/05/05 17:14 # 삭제
아,그 소위 '국민'이라는 작자들은 '강부자','고소영'이런 부류덥니까?(풉;;)
我行行 2009/05/05 18:14 #
열등감을 표출하지 못해 안달하십니까?'강부자','고소영'은 한우만 먹어요.
미국사람은 미국소고기 먹고 광우병으로 안죽는데 한국인은 열등인간이어서 공기로 전염되어 죽습니까?
돈키호테 2009/05/05 19:50 #
최소한 안전한 건 아니죠.
나이쑤 2009/05/05 20:24 # 삭제
아하,열등감이라.그 '광우종말교의 부흥집회'에 한줌도 안된다는 '맞불애국교의 무력집회'의 열등감이십니까?(푸풉;;).어디 가서 광우병 안전하다는 소리 하지 마세요.스페인에서 이번년도에 사망했다지요?
leopord 2009/05/05 20:48 #
아행행 님// 전 교회부흥회 무섭습니다.
我行行 2009/05/05 22:16 #
스페인 사람이 미국 소고기 먹고 광우병 걸렸나요?광우천국
불신지옥
나이쑤 2009/05/06 09:44 # 삭제
我行行 //아아,그렇게 광우종말교가 싫어서 광우병의 존재까지도 물타기로 흘리는 겁니까(풉;;).개인적으로 권찬하는 책이 '도살장'이지.그거 보면 그다지 미국 쇠고기가 먹고 싶지 않을 거라는.그리고,요즘 '지국충'하시는 분들 미국 쇠고기 안전하다고 그러던데,좀 드시기나 하시지?안그래도 미국 쇠고기 판매 부진하다는 말도 있던데 그 분들이 그냥 '사재기 러시'라도 좀 해 준다면 잘 팔릴 텐데,껄껄.어디 가서 '입진보'타령하지 말라고.
나이쑤 2009/05/06 09:47 # 삭제
아,그러고 보니 한자가 '아행행'이였군요.디시 출신이였습니까?허긴,진맹행부터 티안무,ㅁㅁ토모요,해구신등 소위 '우익 기믹 뒤집어 쓴'친구들이 그러고 보니 디시에서 아주 유명한(?)분이였지요.껄껄;;
나이쑤 2009/05/06 13:07 # 삭제
아,그러고 보니 '진명행'이였군요.다시 확인해 보니 '맹'이 되어 있다는.오타인가(쿨럭;;)...
자유로픈 2009/05/05 14:44 # 답글
저도 그 글 보고 울컥했으나 시간이 없어 반박 포스팅을 하지 못했는데, 적절한 글을 올려주셨군요. 짐짓 점잖은 자세로 얘기하고 있으나, 민주주의를 삶의 한 운동으로 보지 않은 채 경직된 체제로 거리낌 없이 화석화하고, 그러한 시각에서 촛불 또한 화석화시켜버리고 마는 그의 논리가 너무나 불편합니다. 차라리 촛불에 대해 화끈한 말로 욕을 하는 다른 일부 블로거들이 솔직해서 좋아보일 지경입니다.레오폴드님이 다른 글에서 지난 촛불의 의미를 물으신 바 있는데, 여기서 제 생각을 덧붙이자면 지난 촛불은 민주주의는 우리 삶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나가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계기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87년체제를 만든 기성세대들(주로 386정치인들)이 민주주의를 화석화시켜나가면서 '민주화에 대한 염증'이 심해져만 가던 상황에서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는 경직된 체제가 아니라 스스로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운동임을 알게 해줬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leopord 2009/05/05 20:50 #
민주주의와 촛불을 화석화시켰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딱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달까요.ㅎㅎ;처음부터 촛불이 민주주의를 촉발시켰던 것도 아니고, 그럴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죠. 그런데 그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되었달까요. 동시에, 그 과정이 반드시 편안하지도 질서정연하지도 않다는 건 좌우를 떠나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촛불의 쇠퇴 시점이 폭력-비폭력 논쟁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도 안타까운 지점이구요.
자유로픈 2009/05/05 21:23 #
6월 10일 명박산성 앞에서 공개적으로는 처음으로(제가 알기로는) 폭력-비폭력 논쟁이 전개되는 모습을 접했을 때, 처음에는 도대체 왜 이런 논쟁을 하필이면 명박산성이라는 괴물 앞에서 해야 하는가 하고 개탄했었는데, 지금은 현재진형행인 고민으로 놔두고 묵히고 있습니다. 일단은 최소한 저는 현장에서 '비폭력'을 외쳤던 사람들을 '얼간이'라고 욕하고 싶지는 않은 정도입니다...
leopord 2009/05/05 21:36 #
저도 당시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 논쟁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면 좋을지 난감했을 거 같습니다(집회에 자주 참여하진 못하던 상황인지라;).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폭력이냐 비폭력이냐를 넘어서서 다중의 힘을 사회에 뿌리내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쪽이 훨씬 건강하지 않나 싶습니다.
루치까 2009/05/05 14:47 # 답글
로봇 민주주의라는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합니다. 혹시나 드는 생각이지만, 저 윗분들은 민중들이 기계적으로 순응하는 정말 로봇같은, 화석화된 '그들만의'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볼Q 2009/05/05 16:23 # 삭제
볼Q/ 너처럼 로그인이면 개쌍소리를 지껄여도 위안을 되는 종자들은 어디에 해당되는거냐?길거리에서 반대로 돌아서 오줌갈기는 놈들과 다른게 없잖아? 안그러냐?
leopord 2009/05/05 20:51 #
저 윗분들이 바라는 건 민주주의가 아닌지도요. (...)
볼프 2009/05/05 22:13 #
볼Q/ 너처럼 로그인이면 개쌍소리를 지껄여도 위안을 되는 종자들은 어디에 해당되는거냐?길거리에서 반대로 돌아서 오줌갈기는 놈들과 다른게 없잖아? 안그러냐?
--------------
아이고 불쌍해라, 80%에 해당되는 비로그인 찌질이가 열폭해서 댓글 달려다 괜한 분 댓글에 댓댓글을 다셨다능, 껄껄껄껄
근데 이거 먹튀신구 아냐? 맞춤법 틀린거 보면... :)
... 2009/05/05 14:50 # 삭제 답글
굉장한 적의를 품고 읽으니까 이런 반론글도 나오는군요. 에휴....좌파에게선 상식을 기대할 수 없나....
우왕굳 2009/05/05 15:16 # 삭제
할말이 없으니까 이런 병신이 나타나는군요. 에휴...
EE!! 2009/05/05 15:20 # 삭제
어떤 점이 비상식적인지 얘기해주면 참 좋을텐데요..
볼프 2009/05/05 15:27 #
*비로그인의 80%는 찌질이*아 물론 아래에 댓댓글 단 우왕굳님과 EE!!님은 20%에 속한다능.
무념무상 2009/05/05 16:49 #
비 상식적인 이유 좀 대보시죠.적어도 보수 꼴통보다는 상식적이라 보입니다만.
게다가 없는 사람은 다 좌파냐?
나이쑤 2009/05/05 17:19 # 삭제
아아,이제는 무조건 '좌파'라고 밀어붙이는 이런 '비상식적'인 발상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만.
들꽃향기 2009/05/05 15:14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
leopord 2009/05/05 21:00 #
감사합니다. :)
ㅇㅇ 2009/05/05 15:19 # 삭제 답글
김우측님이 주장하신건 명분을 가지고 시위를 하자 가 아닐런지요?시위를 하지 말자 가 아닌걸로 보입니다(물론 그 글에서 마지막 문장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요)
12345 2009/05/05 15:54 # 삭제
이게 그의 본심이다. 무엇이든 법으로 따지고 합법이 아니면 부당하다는 태도(법의 중요성과는 별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본문인용)아고라 뻘글러들을 국보법으로 쳐넣어야한다는 분인데요.
나이쑤 2009/05/05 20:32 # 삭제
아,그 분의 다른 포스팅을 보면 '혼네'가 보일 텐데요.이리저리 촛불집회를 부정하고 '좌파의 선동','국보법'운운하시는 분이 언제 그렇게 촛불집회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 줬는지 모르겠습니다.아아,너무 감격스러운 겁니까?(푸풉;;)그냥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이거에요.'촛불집회는 닥치고 하지 마'이거지요.
leopord 2009/05/05 21:03 #
ㅇㅇ 님// 호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전 김우측 님의 글이 좀 다르게 보였습니다.12345 님// 사실 국보법 얘기는 그냥 개그로 넘기는 것이 김우측 님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나 좋은 일이 아니었을런지. (먼산)
나이쑤 님// 촛불집회에 부정적인 것도 그 분의 자유인데, 가끔씩 황당하게 시리어스해져서(만약 정말로 촛불1주년 집회가 북한의 사주 때문이라면... 등) 제가 황당해집니다.-_-;;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려요.
leopord 2009/05/05 21:03 #
저야말로. :)
rumic71 2009/05/05 16:13 # 답글
이야, 간만에 듣습니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한국적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無名공대생 2009/05/05 16:29 #
90년대에 어느 국가에서 주장한 그 '우리식 XX주의'가 떠오르는군요.
shaind 2009/05/05 16:58 #
"We fully understand that there can be a Russian-style democracy." - G.W.부시, V.V.푸틴에게
이소 2009/05/05 18:14 # 삭제
본문에 동의하진 않지만, 이런식으로 개념간 이미지(박정희)를 통한 물타기를 하는 것은 전형적인 선전 선동 전략인것 같습니다만.Leopord와 같은 주장은 무페와 같은 미국 정치학자들도 충분히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그가 말한것은 학계의 기술적 분석 패러다임으론 현재 상황을 분석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김우측이 "당위"주장을 하는데 있어서 "사실"로서의 sonnet의 주장을 끌어오기 때문이라는 주장의 구체화이죠. 이부분을 잊은체 그저 박정희로 물타기 하는것은 선전 선동 이하가 되지 않을듯 하네요.
ουτις 2009/05/05 18:27 #
그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의 종류는 문화권의 종류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으며 그래야합니다. 이 문제는 특히 세계화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 사이에 골백번 이상 강조된 부분이죠.
leopord 2009/05/05 21:15 #
rumic71 님// 미국 민주주의와 다른 우리식 민주주의를 말하려는 건 아니고... 민주주의의 함의를 좁게 정의하는 개념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이론을 위해서는 가능한 개별요소는 배제해야 한다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아무래도 사회과학은 그 이론이 나온 사회와의 관계를 뗄 수 없기도 하고요.무명공대생 님// 갑자기 그 놈의 아리랑이 떠오르는군요...-_-;;
shaind 님// 와우 푸틴☆ (;;;)
이소 님// 무페도 오랫만에 듣는군요.^^ 원전공은 정치학인데 다전공에 치여서 그래프만 파고 있는(그렇다고 딱히 경제학에 능통한 것도 아닌;) 상황입니다. 흑흑;
ουτις 님// 다양성은 어떤 이념이나 의지보다 태생과 환경에서 도출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무념무상 2009/05/05 16:54 # 답글
몇몇 부분에선 반론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공감합니다.덧붙여 원문(본문 말고)은 전체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시위는 하지 말자.는 게 주 요지로 보이는데,
애초에 시위는 대부분 실패하는 게 대부분이죠.
그것도 지배층의 정치적 탄압에 의해서.
성공하지 못 한 시위는 전부 의미가 없고 부정적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군요.
그렇게 따지면 3.1 운동도 어떤 시각에서 보면 실패한 시위인데
의미가 없는 게 되는 건가요?
정당한 사유, 그리고 국민의 지지, 그리고 시대적 흐름에 따른 필요성이 있다면
시위란 성공 여부를 떠나서 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rumic71 2009/05/05 16:57 #
'정당한 사유, 그리고 국민의 지지, 그리고 시대적 흐름에 따른 필요성이 있는가'가 원글의 물음입니다.
무념무상 2009/05/05 17:21 #
원문에선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둘 다 보면서 원문에서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촛불 집회는 실패했다 그러므로 하지말자"
라고 판단 되는데 말입니다.
원문에서 말 하는 걸 그대로 받아줘야 하나요?
rumic71 2009/05/05 19:11 #
원문에서 촛불집회가 실패했다고 한 게 아닙니다. 작년엔 성공할 수 있었지만 올해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leopord 2009/05/05 21:17 #
무념무상 님// 말씀하신 사유-지지-시대적 필요는 다소 결과론적인 말씀이기도 해서 섣불리 말하긴 어려운 부분 같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시위 중에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한다는 것은 더한 난점 같아요.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들이기에 그렇겠지만 말입니다.ㅎㅎ;
지네 2009/05/05 17:14 # 답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4. 의 conqer -> conquer 오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할 꼭지가 많은 좋은 글에 이런 사소한 오타는 너무 아쉽죠.
leopord 2009/05/05 20:29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이런 지적이 많을수록 블로거는 감사할 따름입지요. :)
2009/05/05 17:1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5/05 21:17 #
그, 그래;;; 결국 그런 거였어.OTL
2009/05/05 17:18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5/05 21:18 #
당사자는 그 자유를 중시하시고 저도 존중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시해야 할 시점에서는 좀...-.-;;;
2009/05/05 17:30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5/05 21:18 #
저도 좀 갸우뚱했습니다. 조언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전 좀 글쎄... 싶어서;
오호통재라 2009/05/05 17:31 # 답글
잘 읽었습니다.
leopord 2009/05/05 21:18 #
감사합니다.
ουτις 2009/05/05 18:43 # 답글
테크노크라시 글쓴이입니다. 이 외에도 sonnet님의 기본적인 자세를 알려주는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사회의 구원자로서의 엘리트를 꿈꿨던 케인즈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이 그 중 하나이고, 언젠가 보았던 기업 내부구조에 대한 글 역시 소수의 BOD 그룹이 (board of directors)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가운데 더 높은 효율을 구가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 좋은 사례입니다. 그 외에도 생각해보면 더 나오겠죠.그러나 이 자체로 공익 증진은 결코 보장되지 않습니다. 엘리트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공익에 복종하도록 강제되어야 하며, 기업 운영진이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사원 개개인의 복지 향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또 다른 관문을 거쳐야만 합니다. 투표권이나 노동권의 보장, 그 외의 많은 장치들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구요.
제 입장에 대해서 강조할 부분은, 민주적인 절차와 기술관료의 지도가 조화를 잘 이루는 형태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추구할만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는 별개의 것-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담보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이며, 불행히도 상충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의민주제를 운영하는 모든 국가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해야만 할 문제일 것입니다.
제가 가진 우려는, 마치 이 긴장과 부조화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치부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이념을 필요에 의해서 부득이하게 희생하면서 '원래 민주주의는 이런 것이다.'라는 태도나, 민주주의 이념에 의해서 중우정치에 끌려가면서도 그것이 문제 없는 것인 양 하는 모두에 대해서 꺼림칙한 기분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현재의 촛불시위는 전략적으로 이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우측님의 글에 남긴 리플에도, 시위 자체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동의를 표했었지요.
leopord 2009/05/05 21:27 #
1. 케인즈는 지적으로도 뛰어났고 현실에 대해서도 열성적으로 개입한데다 여러모로 매력이 많은 캐릭터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트만으로는 사회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다만 엘리트의 권한을 구속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의 수준과 범주가 점차 변하고 있지 않은가, 다중지성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그 강고한 틀이 깨어지는 과정에 있지 않은가 거칠게 생각하게 되네요.2. 사회구성원을 엘리트와 다중으로 나누는 구분이 얼마나 유효한지 전 확신이 안 섭니다. 물론 담론제공자로서의 지식인은 존재하겠지만... 이 부분은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3. 제 포스팅은 자칫 민주주의의 중우정화를 촉진시키는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그럴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텍스트도 그렇게 써먹겠지만.). 다만 지금의 상태는 말씀하신 두 가지 길 중에 전자에 빠져들고 있지 않나 걱정됩니다.
4. 작년과 똑같은 촛불은 있지도 않을 거고 억지로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시위행위를 하지 말자, 이래선 곤란하다고 생각하구요. 그래서 "촛불이여, 다시 한 번!"이라는 주장은 좀 피하면서 구체적인 사안을 가지고 정부와 싸워야 하지 않나, 또 지지자를 결집시켜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ουτις 2009/05/05 23:57 #
1, 2번에 대해서는, 무지개나 색상 스펙트럼에 명확한 경계선은 없지만 색깔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유용하듯이, 엘리트와 일반 대중에 대한 명확한 경계선을 포착할 수 없다고 해도 그 개념은 나름의 유용성을 가지지 않을까 싶습니다.3번에 대해서는 저도 깊이 동감합니다. 정치는 이해관계 갈등 사이에서의 흥정이어야 하건만, 현 정권은 선거에 의해 획득한 합법적 권한이라는 이유로 이것을 무시한 채 법조문에 근거한 일처리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유효한 해결책이 쉽게 생각나지는 않는 중이구요. 중우정치 촉진은 레오포드님의 글에 대한 적절한 해석은 아닌 것 같습니만, 마음먹고 오독하려는 사람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요. :-)
4번에 대해서도 공감하는데 제 식으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여권을 비롯해서 현 정권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반대에 의한 결집에 의존하기보다는 새로운 표어 완성에 힘을 기울일 시점이 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근태가 이전에 주창한 평화-민주도 이 시점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 표어고, 오바마의 "우리가 바라는 변화"표어도 좋습니다. 그렇게 이룩된 결집만이 진정한 결집이라는 것이 노통 5년 임기간에 제가 얻은 교훈입니다.
wlp 2009/05/05 19:58 # 삭제 답글
일단, 대규모 대중시위라는 건 '하고싶다,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고 마음먹는다고 실행되거나 하지 않게 되거나 하는 게 아니죠. 작년 이맘 때 즈음에,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우게 될 거라고 (그러길 바란 사람은 있겠지만) 예견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대규모 대중시위를 하지마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에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leopord 2009/05/05 21:31 #
동의합니다. 촛불 1주년을 돌아보는 지식인들의 글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건 예측불가능성의 재현을 기대하진 말자는 겁니다. 뒤집어 말해 앞으로 저항이 어떤 방식으로 대규모로 도출될지도 예측하기 어렵단 것이죠. 작년의 경험을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는 물론 투표로, 정당으로, 주민모임으로 전환하려는 노력과 병행해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09/05/05 20:36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5/05 21:32 #
말씀하신 자유민주주의의 반공주의적 성격에 대해선 8,90년대 소장 정치학자들의 주요 주제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지 않나 싶었는데 그 분도 좀 그런 성향이 있으신 듯 하고;;;
원래그런놈 2009/05/05 22:05 # 답글
처음부터 김우측이란분의 언행이 생각나서 저로써는 그 글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부터 오더군요.하지만 저는 지금은 촛불시위가 합법이던, 불법이던 일어나는 것 만으로도 '정치적'으론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생각입니다.
leopord 2009/05/05 23:27 #
촛불이라는 타이틀이 꼭 필요한가 싶기는 한데, 그건 의도라기보단 차라리 습관이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촛불이 시위와 우리나라 정치에서 의미가 있어진 게 2002년이니 엄청나게 문제될 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원래그런놈 2009/05/05 23:30 #
촛불은 그 상징성 때문에 쓰인다고 생각합니다.
보리밭 2009/05/05 22:06 # 답글
언제나 명쾌한 글. 무척 공감하고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leopord 2009/05/05 23:27 #
저도 많이 배우고 그래야 하는데 이 놈의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 2009/05/05 22:45 # 삭제 답글
김우빨은 자신의 글이 논파당하자 댓글을 삭제해버렸다. 그 사실을 통해 그 자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알 수 있었다.
.. 2009/05/05 23:11 # 삭제
자칭 좌빨이라는 사회부적응자중에 더더욱 많더구나대체로 싸가지는 없는게 더 많더라만
leopord 2009/05/05 23:31 #
. 님// 댓글을 삭제한 건 못 봤고, 이 글이 나오기 이전에 댓글관리한다는 말씀만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구신 소환중... 2009/05/06 00:03 # 삭제 답글
해구신아 해구신아 머리를 내어라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제리 2009/05/06 12:05 # 답글
심심하다아...
leopord 2009/05/06 14:22 #
난 요새 좀 심심하기가 좀...;;;
2009/05/06 14:12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5/06 14:22 #
촌철살인 추천평이 대세 아닐까요. (...)
あさじ(asazi) 2009/05/06 14:53 # 삭제 답글
Hello, I am a Japanese blogger.This blog is beautiful design.
Good luck, Mr. leoport.
leopord 2009/05/06 17:21 #
Hello :)Actually, this blog has a kind of forms that Igloo service have. It's just a given design.
I invited your blog a few minute, I agree your favor especially Korean-Japanese friendship, but don't agree some political issue just like Dokdo.
However, it's just simple problem, maybe. I cheer your bloging for K-J friendship.
Good luck, too.
2009/05/06 23:2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5/07 00:07 #
민주주의를 삶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 제도와 체제라는 실체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은 적절합니다. 사실 sonnet 님이 주목하는 부분도 그렇고, 제도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 내지는 그 실현체로서 존재하는 것인 만큼 중요하죠.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형태를 뚜렷이 말씀드리기엔 저도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단순히 '지금 여기' 있는 것이 아닌 것만을 추구한다면 그건 그냥 이상만 제시하는 거지, 이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말한다면, 다중의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고 시민-정당 사이의 관계를 긴밀하게 만드는 것을 큰 방향으로 잡고 여기에 대통령중심제, 이원집정제, 의원내각제 중 다중에게 보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정치체제로 가는 쪽으로 꾸준히 고민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의원내각제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만(의원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쪽이 더 좋다고 보거든요.).
세부적인 부분로 들어간다면 폐지된 지구당 제도를 복원하는 방식 등으로 정당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토대를 재구축하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입을 권장하기 위한 보다 폭넓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운영 등 진보정당의 원내정당화를 촉진하는 방향을 지지합니다. 물론 이런 제도들이 반드시 진보정당에 유리한 것은 아니지만, 진보정당 역시 정치적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준비된 예비내각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렇게 독창적이지는 않은 의견이라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지금으로선 그렇습니다. 민주주의를 다중의 분출되는 힘으로 파악하는 관점을 지지하지만 그 방법은 상당히 온건한 쪽입니다. 민주주의는 제도화된 것 이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저 자신의 본심(?)도 재확인하게 되었군요.ㅎㅎ
유치찬란 2009/05/07 04:01 # 답글
김우측옹의 글은 계몽주의적이었죠. 좀...글쎄요. 저는 계급으로 사회를 보는 사고방식에 꽤 공감을 하는 편입니다만, 현재 사회과학의 분석관점에도 계급주의적 분석방식은 사라진지 오래지요.(한국에선요.) 맑스의 이름은 갈등이론의 부분에서 아주 잠깐 나올락 말락일까요?
한국의 민주주의는 운동 이후로는 철저하게 top down방식으로 이루어졌고(운동권은 어디로 갔을까요?) 기술관료적 체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애초에 이 관료들은 박정희-전두환을 이어 내려온 관료들이었고, 그것은 정치권이 어떻게 바뀌든 행정권은 행정권대로 이어내려오면서 정치권의 무능을 점차적으로 잡아먹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지요.
그런 부분에서 기술관료적 부분에 있어서 한국은 효율성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는 아주 높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공무원, 아니 유럽의 공무원과 비교한다 해도 한국의 공무원들의 효율은 아주 높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보다 높은 곳을 찾는다면 가까히서는 싱가폴정도일까요? 물론 공무원들의 자기밥그릇 지키기는 저도 싫어하지만, 되려 공무원처럼 기업이 평생직장시스템을 갖는게 저는 오히려 옳다고 보다보니, 이건 눈꼴시렵진 않습니다. 애초에 저는 노조를 부정한다거나 하지도 않고 말이죠.
문제는 정치권의 무능이지. 이놈들이 정책 잘못짜니까, 병신같은 생각을 하라고 시키고, 시민 갈등해결할 생각은 안하니까, 일은 효율적으로 해봤자 할 일 자체가 문어발로 늘어나는 겁니다.-_-;;;
저는 애초에 김우측님이 말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닌 법치주의라고 생각하며 넘겨버렸습니다만.. 대표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이 들고 일어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저로썬 사실 이해하기 힘든 글이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인겝니다. 대의민주주이이든, 대표되는 정치인을 투표로 뽑는거든지 그건 변함없습니다. 정치인을 뽑는이유? 우리 시민의 갈등을 대표하기 위해, 갈등의 해결을 위해 뽑은거지 지 잘먹으라고, 1%대표하라고 뽑은 시민은 1%밖에 없을겁니다. 물론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 보기에는 시민들의 방식이나 생각이 병신같을 수 있습니다. 아는 지식수준이 더 많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면 정당한 이론과 정당한 근거를 시민에게 전달했으면 좋겠습니다. MB처럼 병신같이 말도 안되는 프로파간다 해대면서 입닥치고 추진하는 건 애초에 독재에 가까운 방식입니다.
leopord 2009/05/08 01:00 #
전반적인 논의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런 정치인을 뽑은 것 또한 시민(국민)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두 가지 의미의 자유-선택의 자유와, 그 결과에 구속될 가능성으로서의 자유-를 부여하지 않나 싶네요.법치주의라는 것도 자칫 기계적으로 해석되고 운용되면 단순히 억압기제 밖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법의 주체와 대상이 역전될 때 종종 발생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법을 아예 없애는 방식도 현명한 방식은 아니고 말입니다.
MB는 프로파간다만 할 줄 알죠-_-;;; 전 그가 죽었다 깨어나도 독재자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의 무식한 CEO 리더쉽은 독재적이긴 해요-_-;;
asazi 2009/05/08 06:04 # 삭제 답글
Thank you for cheering me. 고맙습니다.
leopord 2009/05/08 10:11 #
No problem. 천만에요. :)
백범 2009/05/21 19:13 # 삭제 답글
차라리 파시즘이 가능했던 때는 노무현때였다고 생각됩니다.파시즘은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참여와 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하죠.
촛불이 성공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