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 무한회귀의 주인장

0. 드디어(?) 종강을 했다. 아무래도 개강 때의 활기는 종종 그래왔듯이 사그라들었고 스스로에게 약간 실망도 하고 그랬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

1. 기말고사는 그럭저럭 본 편이다. 중간고사에 비해 준비는 덜 했는데 오히려 잘 본 느낌이 든다(어디까지나 느낌이 그랬다는 얘기다.). 이쯤 해서 이번 학기 과목들에 대한 촌평을 달아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2.
1) <경제학원론1> : 자만하면 안 되었다. 그리고 원론 만큼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 없다는 걸 다시 확인했던 시간이었음. 사실 <맨큐의 경제학>을 사지 않고서 온라인 강의화면과 PPT 자료만 죽 따라갔는데, 수업을 끝내는 것만이라면 상관없지만 그 이상의 이해를 원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중간고사 지나고부터는 의욕도 반쯤 잃어서 강의시간을 놓쳐 두 번이나 결석처리 되는 등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어 아쉽다.

2) <미시경제학> : 최정표 교수의 <미시경제학> 교재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편인데, 사실 교재만 가지고도 개념을 익히는 데에 큰 무리는 없는 것 같다(아무래도 이준구의 <미시경제학>이 가장 유명한 것 같다만.). 교수님 강의 스타일은 문제풀이 위주라, 계산만 잘 하면 큰 문제는 없는 듯(그러나 본인은 계산에 약해서 좀 고생을...). 하지만 막상 기말고사는 기존의 문제풀이보다 개념이해와 관련한 문제들이 나와서 좀 의외였음. 시험 난이도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미시경제학의 나머지 파트는 다음 학기 <후생경제학>으로 넘어간다.

3) <국제무역론> : 국제무역이론을 영어로 듣는 절대평가 수업. 교수님이 원어민이 아니라는 단점에도 수업자료 PPT 읽으며 따라가면 그럭저럭 쫓아갈 수 있는 수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역시 경제학은 그래프라, 그래프만 제대로 이해해도 반쯤은 따라갈 수 있는 것 같다(나 자신의 실력과는 별개로...). 교수님이 온화한 외모와는 다르게 과제에는 깐깐한 편인데, 덕분에 수업 따라가는 데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안녕, 헥셔-올린 모형.

4) <경제사와 세계경제> : 이번 학기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수업. 일전에 이야기했던 최배근 교수님 수업이었는데, 이 분, 나랑 잘 맞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안 맞는다. 물론 지금이야 어느 정도 스타일을 따라가게 되었지만, 나 스스로 교수님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거나 혹은 자신의 지식을 과신했던 것 같다. 자율과제는 나쁘지 않았다. '공정무역'을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교수님 스타일이 워낙 1:1 메일교환을 선호하시니 이런저런 다양한 얘길 자주 할 수 있었음. 아쉬운 점은 수업의 이름이 <경제사와 세계경제>인데, 교수님의 고민인 '경제의 포스트모던화'에 치중한 나머지, 세계경제의 역사적 변화에 대해서는 깊이있게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 다음 학기에는 좀 더 그 점이 고려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5) <한국경제론> : 같은 교수님의 수업으로 내용은 <경제사와 세계경제>의 연장에 있다. 한국 경제성장의 역사와 그 기반을 이루는 역사적·경제적 배경을 다루는 과목인데, 중간고사 끝난 한 달 뒤에는 '더 나은 고용, 더 좋은 고용'을 주제로 하는 토론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토론수업 자체에는 큰 불만이 없는데, 학생들의 발언 하나하나를 개별 점수로 체크하다 보니 비록 팀 발표긴 해도, 팀과 팀끼리 뿐만 아니라, 팀원 간에도 경쟁이 발생하는 역설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좀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 수업의 원래 주제인 '한국경제의 역사'에 바탕을 두고 토론도 수업주제에 맞게 이뤄지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6) <성과 문학> : 이제는 조금 식상하지만 그럼에도 섹슈얼리티와 젠더, 에로티시즘 등 여성주의적인 담론들은 논쟁의 여지가 풍부하다. 이걸 토론과 팀 발표로 끄집어 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교수 개인의 생각 전달에 치중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비록 신입생들이 대부분이었다고는 해도 여성주의적인 담론을 여학생이 아닌 남학생, 그것도 복학생들이 종종 이야기한다는 것도 묘한 역설이다. 지식 자체는 성별불문하고 취할 수 있지만,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좀 별개의 문제 같은데.

3. 써 놓고 보니 무슨 강의평가 같이 되어버렸는데, 사실 강의평가 내용도 그닥 다르지 않다-_-;;; 적어도 4 ~ 6번은 거의 그대로 쓴 듯;

4. 학점도 좋고 다 좋은데, 결국엔 자기에게 얼마만큼 충실했느냐 그게 문제인 것 같다. 그 점에서 봤을 때 난 100점 만점에 50점이나 될까 말까. 잠시 동안, 지금 내가 배우는 지식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고민도 했다. 사실 이 고민은 입학했을 때부터 해왔던 거라 이젠 좀 만성이 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이젠 한 학기 밖에 남지 않았다. 학점이 좋은 것도 아니다. 딱히 어학연수를 가거나 유학을 했거나 한 것도 아니다. 내가 겪은 경험은, 쌓은 지식은 적어도 일반적인 사회진출의 레일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사실 좀 막막하다. 88만원 세대가, 도시 빈민이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5. 그래도 나를 위해 축하해주기. 한 학기 동안 수고했고, 방학 때 빡세게 살고, 다음 학기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라기.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일 거 같다. 곧 종강파티를 나간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한 학기가 지났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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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6/19 17:0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opord 2009/06/19 18:35 #

    ㅎㅎ 그러게. 하루쯤 시간 내서 차 마시며 얘기하기 참 힘든 거 같아;
  • Hendrix 2009/06/19 17:17 # 삭제 답글

    수고했어. 이따 보자.
  • leopord 2009/06/19 18:35 #

  • 소시민 2009/06/19 18:28 # 답글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빨리 복학해서 강의를 듣고 싶네요.
  • leopord 2009/06/19 18:35 #

    소시민 님 우리 열심히 힘내보아요T.T
  • 2009/06/19 18:31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opord 2009/06/19 18:36 #

    제가 자주 보였나요? ㅎㅎ; 저도 반갑습니다.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래요.
  • Tabipero 2009/06/19 19:35 # 답글

    종강 축하합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방학있는) 학부생과 군필자가 제일 부럽습니다.
  • leopord 2009/06/20 01:53 #

    감사합니다. 전 오히려 타비페로 님이 부러운 걸요?ㅎㅎ; 연구로 쌓인 스트레스를 여행으로 푸신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쪽이든 잘 되실 거라고 생각해요.ㅎ
  • 2009/06/19 22:40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opord 2009/06/20 01:57 #

    저도 좀 느껴요.ㅎㅎ; 전 기질로는 사회과학 쪽은 좀 아닌가 봐요. 그럼에도 저의 부족한 면을 좀 채우고 싶고, 제가 못하는 것도 해보면서 제 한계를 좀 가늠하고 싶어요.

    언어감각이라...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건 있는 거 같아요. 느낌이거든요. 글이 확 당기는 그런 기분이랄까... 이건 특별한 방법은 없는 거 같고, 끌리는 책을 읽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굳이 감수성을 키우겠다, 이런 생각에 시나 소설을 뒤적이는 건 오히려 역효과인 거 같고.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수리철학의 대가(로 알고 있는)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Conquest of Happiness)입니다. 수학을 하더라도 이렇게 깔끔한 글을 쓸 수 있구나 싶을 거에요. 알랭 드 보통의 글도 추천하고요.ㅎ
  • Livgren 2009/06/20 15:24 # 삭제

    참...덧붙여서 레오폴드님 같은 글쟁이(?) 조아해요... 멋있어요!!!
  • leopord 2009/06/20 20:54 #

    앗... 감사합니다.ㅎ; 분발하겠습니다.
  • 국화 2009/06/19 23:08 # 답글

    자 이제 삼겹살 -
  • leopord 2009/06/20 01:57 #

    삼겹살 대신 이자카야였답니다.ㅎㅎ;
  • Mitena 2009/06/19 23:33 # 답글

    한학기 남았구나 ㅊㅋㅊㅋ ㅎㅎㅎㅎ 나도 나름 오늘 종강했지만 재편집, 재시사가 남아있구나 ㅜ.ㅜ 방학때 계속 학교에 있으니 종종 연락하시게나.
  • leopord 2009/06/20 01:58 #

    바쁘구나. 나도 좀 바빠질 거 같긴 하지만... 조만간 봅시다.ㅎ
  • 일리아스 2009/06/20 18:21 # 답글

    0. 조금 더 바빠지시겠군요....홧팅입니다 ^^
    1. 가끔 시험 끝나고 느끼는 기분과 결과가 다를때가 있으니 (...) "망쳤다"라고 생각된 것이 잘 나올때는 기분이 묘해집니다. ^^;;
    5. 오호.. 긍정적인 마인드. ㅎㅎ
  • leopord 2009/06/20 20:55 #

    1. 사실은 그냥 망했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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