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무한회귀의 주인장

앞선 글에서는 한예종 학생들의 사회참여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말해 학생들이 세상에 억지로 끌려나온 것 같은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굳이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지 않아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것, 나의 욕망과 너의 욕망을 서로 인정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생이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세상은 어떤 점에서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세상은 항상 정상이 아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학생이 전면에 나서는 세상은 끝났다고들 생각했을 것이다. 학생운동의 잔재가 조금씩 죽어가는 대학에서, 교수들은 이제 데모 같은 건 하지 않겠노라고, 그런 게 먹히는 시대는 지났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이건 인상비평에서 그렇다는 거다-세상은 사람들에게 또 다시 자신을 똑바로 보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아도 이뤄지는 민주주의. 그게 내가, 혹은 당신이 꾸는 꿈이다. 그걸 거칠게 우리가 꾸는 꿈이라고 해두자. 민주주의는 평화를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는 평화로운 시스템이 아니다. 관심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이명박이 물러나면 세상은 더 나아질까? 관심이 끊어졌을 때 불편함은 덜하겠지만, 그건 새로운 이명박을 부르는 또 다른 신호가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민주주의는 평화로운 시스템이 아니다. 끊임없이 간섭하고 개입해야 하는 귀찮은 방식이다.

한예종 학생들의 싸움이 좀 더 일상에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과, 민주주의를 억지로 입에 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은 이렇게 충돌하다가 하나가 된다. 사실 나도 민주주의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단지 그게 내 자유를 위해 불편할 의무 내지는 권리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는 모순에 기반을 둔다. 이 글도 모순에 기반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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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예술대학 2009 - 한예종에서 예술의 자유를 위한 공부가 시작된다! 2009/06/23 20:21 #

    공식 포스터가 있으나 따로 제작해 보았습니다. 양해를 (…) 2MB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시작된 문화계의 '좌파 적출' - 실제로는 그냥 자기 맘에 안 드는 사람을 몰아내자는 것이지만, 자기네들이 말하는 용어 - 로 문화예술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립현대미술관, 영상진흥위원회, 한국언론재단이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기관이었다. 그리고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로 8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시인 황지우가 총장으로 '...... more

덧글

  • 바로서기 2009/06/21 20:02 # 답글

    마지막 문장은 좀 치사한데^^ 개인적으로 요즘 학생들의 거리 참여와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는데 비슷하다.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아니라 그런 것을 잊어버린 시대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21세기는 거리와 민주주의라는 정치공간에 대한 치열한 사고의 투쟁이 될 거 같아. 그나저나 촛불 이야기할 때 민주주읫대 촛불세대 운운하던 사람들은 어디갔지. 왜케 요즘 미디어의 담론은 생명력이 짧은 건지..
  • leopord 2009/06/21 22:28 #

    치사해 보이나?ㅎㅎ; 얼마나 치열한 사고의 장이 될까? 나도 궁금궁금. 요즘 담론은 진짜 아침 때 다르고 저녁 때 다른 거 같아;
  • Hendrix 2009/06/21 22:01 # 삭제 답글

    '기반'은 동사가 아니고 명사이기 때문에 '기반을 둔다'가 맞는 표현.
  • leopord 2009/06/21 22:28 #

    ㅋㅋㅋ 따끔하게 알려줘서 고맙다ㅎ
  • 백면서생 2009/06/21 23:03 # 답글

    좀 재미없게 말하면 지난 십여년 동안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십만양병설'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풍신수길이 왔을 뿐이지만 조금 있으면 누루하치가 올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일은 현실이되 시야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게 좋겠지요. 반대로 말해도 무방하구요.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는 일을 지루해하는) 시대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것은 존중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순'이라는 레오포드님의 말이 맞습니다.
  • leopord 2009/06/22 04:21 #

    누르하치가 온다니 그렇게 생각하면 좀 무서운데요?^^;;

    민주주의를 지루해 하는 시대도 좀 지나고 있지 않나 싶어요.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게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는지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와의 차이로 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나 싶구요.

    걱정되는 건 그래도 역시 포스트 이명박 정부겠죠.^^; 박근혜 혹은 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빈자리를 채웠을 때 그걸로 민주주의가 달성된 걸로 생각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과거를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 말입니다.
  • 백면서생 2009/06/22 11:44 #

    지나고 있다면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차기 정권도 문제 없겠지요.
  • 강수영 2009/06/22 01:22 # 답글

    저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광장에 나와 마주하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 6월 10일 권해효의 발언처럼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
    바쁜 일 제쳐두고 나와야만 하는 현실도 밉습니다.
    하지만 그래야만 민주주의가 돌아가니까, 그게 속성이니까, 어쩔 수 없겠죠.
  • leopord 2009/06/22 04:23 #

    불편함이 만성이 된다면, 우리 몸에 확실히 습관으로 새겨진다면 좀 나아지지 않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입니다.^^;
  • Skyjet 2009/06/23 20:23 # 삭제 답글

    투쟁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것은 '당연한 상식'을 몸 속에 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열심히 기사도 쓰고, 지방에 사는 와중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 leopord 2009/06/23 21:04 #

    청소년 운동을 비롯한 Skyjet 님의 활동, 틈틈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상식이 몸에 배어있도록 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지만, 동시에 잘 되길 바래요. 응원하고 있습니다. :D
  • 자유로픈 2009/06/24 13:13 # 답글

    뭐 말장난일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체제 하에서 자유를 누릴 권리와 자유권을 보전하고 확장시키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불편함'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무가 꼭 모순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사족 하나. 바램->바람...^^;; 알고는 있지만 저도 가끔씩 실수하는 단어죠.
  • leopord 2009/06/24 13:56 #

    그 모순이 꽤 불편하다는 이야기고, 그걸 넘어서는 과정이 곧 민주주의가 아닌가 라는 단편적인 말이었습니다.ㅎㅎ

    바람이라고 써야 하나 싶은데 좀 혼동되어서요. 국어사전을 항상 준비해야 하지 않은가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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