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예나 지금이나 좌파의 존재적 모순은 대개의 좌파들이 자신이 대변하는 계급 자체가 아니라는 것, 그 계급의 인민들의 현실 속에서 실제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좌파는 늘 그 모순에 긴장해야 한다.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지 않는 좌파 인텔리의 관념 속에서 그 현실은 잠시 미루어지거나 생략될 수 있다. 싸우다 지치면 잠시 휴가를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민들에게 그 현실을 미루어질 수도 생략될 수도 없다. 그들의 현실엔 휴가가 없다. (김규항, <좌파란 무엇인가>)
1.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는 좌파 인텔리...가 될까 말까 해서(전자 말고 후자), 이게 당장 먹고사니즘에 얽매여 있는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 건지, 수치심을 가져야 하는 건지 알쏭달쏭하다. 그럼에도 가장 오래 살고 잘 사는 건 뻔뻔한 사람.
2. 얼마 전에 쓴 장문의 한예종 글은 쓴 사람도 불만족스럽고 읽은 사람들에게도 적절하게 다가가진 못했던 거 같다. 이상하게도, 난 한예종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몇몇 친구들이 그곳 학생이고, 종종 산책길 삼아 들르는 학교인데도, 아니 오히려 더욱 그렇기 때문에 주저하고 망설였던 건 아니었을지. 거리두기는 나의 장기...가 아니라 나의 고질병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필요할 땐 왜 발동이 안 되는 것이냐. (...)
3. 고민스러운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주말 알바는 정해진 것 같은데 어차피 평일 일도 필요하고 또 좋은 경험도 될 수 있을텐데, 몇 가지 걸리는 게 있다. 이걸 어찌할꺼나...
4. ‘유연한 좌파’ ‘쿨한 좌파’ ‘상식적인 좌파’ 다 좌파에겐 약이 되는 말들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좌파를 더 이상 좌파가 아니게 하는 것이라면 그 말들은 좌파에게 독일 뿐이다. 오늘 이 ‘개념 없는’ 세상에서 여전히 자신을 좌파라 말하는 사람들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좌파란 무엇인가? 대체 나는 누구인가? (김규항, 같은 글)
5. 좌파를 더 이상 좌파가 아니게 하는 것, 반대로 좌파를 여전히 좌파가 되게 하는 것, 김규항은 그것을 '계급'에서 찾는다.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계급을 되살리는 것. 전선은 분명해지고, 어쩌면 여전히 그 이름은 불편하지만 또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탈근대 사회의 탈계급이 도리어 계급으로 돌아온다는 건 분명히 역설적이다. 이택광의 '촛불과 중간계급' 분석이 힘을 갖는 건 '지금/여기'에서 오히려 계급성이 도드라지기 때문이 아닐런지.
6. 그래서 묻는다. 좌파란 무엇인가? 대체 나는 누구인가?
7. 이 새벽은 지금이 6월 25일 오전 2시 40분임을 알린다. 순국선열을 말하기엔 이 날의 상처는 너무 크고 아프다. 전쟁 아래 스러져간 모든 영혼에게 위안이 있기를.
- 2009/06/25 02:41
- leopord.egloos.com/4173670
- 덧글수 : 20












덧글
校獸님ㄳ 2009/06/25 03:57 # 답글
오늘 알바가 끝나서 돌아오는 길인데 6 25란게 떠오르더군요. 참 슬픈 날입니다.
leopord 2009/06/25 22:43 #
그럼에도 오늘 하루는 그냥 그렇게 지나가겠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요. 그래서 기억이 필요한 것일테고 말입니다.
2009/06/25 08:25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6/25 22:46 #
사실 그쪽에서 즐겨 쓰는 무기란 것들이 좌파들이 자아비판(하여간 이놈의 자아비판만 ㅎㄷㄷ하게 하는-_-...)할 때 쓰던 이야기들이 좀 있죠.
소시민 2009/06/25 09:27 # 답글
7.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leopord 2009/06/25 22:48 #
오늘 청계광장에서 열린 6.25전쟁 사진전에 갔다왔어요. 전형적인 우파+UN군 만세 중심의 사진전이었지만 당대의 기록으로써 좋은 사진전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진에 붙은 설명글 : 북한 공산주의자의 야욕에 의해 자유를 원하는 국민들이 전쟁에 휘말렸다 등등은 잘 걸러서 봐야 하지만-_-...
Hendrix 2009/06/25 09:54 # 삭제 답글
좌파 인텔리의 아이러니는 항상 돈!!
leopord 2009/06/25 22:48 #
이 죽일 놈의 돈-_-...
국화 2009/06/25 11:32 # 답글
6.25.. 이 날짜만 다가오면 마음이 뭐라 표현하기힘든 감정이 나타나요 .
leopord 2009/06/25 22:49 #
저도 좀 다른 의미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저련 2009/06/25 12:24 # 삭제 답글
규범적인 것과 사실적/자연적인 것을 구분하면 충분하지 않나요. 구체적인 내용이야 상황 의존적인 것이 되겠지만. 저 진술들대로라면 김규항씨는 형이상학을 필요한 만큼 하질 못하는 듯 합니다..
leopord 2009/06/25 22:51 #
규범이 사실과 불일치할 때, 그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 그 문제를 짚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상황의존적이지만, '유연한 좌파'가 지나치게 유연해질 때 과연 그를 좌파라 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유연해져야 하는가 라는 정체성 문제로 들어가게 되기도 하고요.
Lena 2009/06/25 16:56 # 답글
좌파인텔리라, 이름은 멋지네요. 예전에 어떤 언니가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다가 갑자기 유학을 오게 됐는데, 사람들이 다 현실도피라면서 비난했었다네요. 근데 그게 김규항씨가 말하는 휴가같아요. 휴가가 아닌 휴가. 아니 휴가가 될 수 없는 휴가. 그래도 아직도 그 언니는 많은 꿈을 꿉니다. 대안학교라던지 하는 것들. 어차피 좌파라는건 꿈꾸는 사람들이 아닌가요. 누가뭐래도 ㅎㅎ
leopord 2009/06/25 22:54 #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레나 님 이야기에서 받은 인상은 그 분이 꽤 지쳤다는 느낌이네요. 조직생활로 인한 것일 수도,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 때문일 수도, 혹은 전혀 다른 이유일 수는 있겠죠.솔직히 전 가끔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을 너무 손쉽게 비난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너무 조직과 목적에 충실해 그런 사람을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로 몰기도 하고. 그래서 전 그렇게 이탈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요. 저조차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아닌 게 아니라 그럼에도 꿈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좌파 맞나봅니다.ㅎㅎ;
비르투 2009/06/25 20:30 # 답글
사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급급하다면 좌파가 되기는 커녕 정치 자체에 관심을 가지기 힘들죠..
leopord 2009/06/25 22:55 #
요즘 제 고민도 그겁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고.-_-...
2009/06/25 23:0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6/26 00:02 #
개인적으로는 김규항의 이번 글이 보여주는 단순명쾌함이 좋아서 인용한 것도 있습니다.^^ 이 얘기가 기존의 계급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배제하자는 건 아니고요(물론 구좌파적 계급관에 그런 점이 분명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소수자와 소수자 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적절한 지적입니다. 그에 동감하는데,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계급으로 환원해서는 안 되지만 계급성이 현실적으로 점점 뚜렷해지는 만큼 이를 외면하거나 애써 피해선 안 되지 않나 싶어요.아래에 백면서생님도 이야기하셨듯이 전선으로 피아를 선명하게 하려면 타도해야 할 대상을 먼저 선명하게 해야 할테지요. 그게 이론이니까요. 이 얘긴 거꾸로 말해, 뚜렷한 적이 존재하지 않는 탈근대 사회에서 기존의 계급관이 무력하게 무너졌던 경험이 고스란히 반복될 것에 대한 우려이자 경고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좌파의 관심사와 스펙트럼이 그만큼 다양해졌고 그에 대한 주장/설명/반박이 이뤄질 거라고 봐요. 그래야 하기도 하고요.ㅎ
백면서생 2009/06/25 23:45 # 답글
단단한 바닥으로써의 '계급'으로 환원되려면, 다시 그게 대체 뭔지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좌파가 뭔가 묻기 전에 말입니다. '전선'으로 피아를 선명하게 하려면, '타도'할 대상을 먼저 선명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이론에 맞고, 이론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게 좌파지요.그 지점에서 무페와 라클라우를 좀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leopord 2009/06/26 00:04 #
모든 걸 계급으로 환원하는 태도는 반대하고요, 물론 그런 말씀이 아닌 줄 압니다.ㅎㅎ 이건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인데, 꾸준한 고민거리인 거 같아요.무페와 라클라우... 그러고 보니 포스트모던한 정치학을 이야기한 분들로 알고 있는데(그 이름도 이진경의 <맑스주의와 근대성>이었는지, <철학의 외부>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거기서 읽었던 거 같아요.), 좀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에 그 쪽 책이 읽고 싶어지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