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주홍글씨>의 변혁, <행복>의 허진호, <아나키스트>의 유영식,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민규동, <작업의 정석>의 오기환. 장편감독들의 옴니버스물로, "재밌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기획 아래 의기투합한(?) 흔적이 뚜렷하다. 컨셉은 '에로스'지만, 엄청 야하다거나 한 건 아니고 섹스, 사랑, 더 나아가 삶을 다각도로 다루는 나름의 의식이 있다. 물론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2. 전체적으로 무난한데, 감독들만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나오는 것도 체크 포인트. 허진호 감독의 <나, 여기 있어요>는 그가 천착하는 주제인 '이별'을 재생산하면서 고유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유영식 감독의 <33번째 남자>는 꽤 낄낄대며 볼 수 있는 개그물. 김수로는 참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한다. 민규동의 <끝과 시작>은 "영화는 판타지다" 라는 명제를 고스란히 반복하면서 정하(엄정화)가 재인(황정민)을 떠나보내고 나루(김효진)를 새로 맞이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오기환의 <순간을 믿어요>는 언니네이발관의 <순간을 믿어요>의 제목에서 영감을 얻었다는데, 노래 가사와는 좀 별개로 고등학생들의 일일 파트너체인지를 소재로 했다.
3.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건 변혁의 <his concern>. KTX를 타고 업무차 부산으로 내려가는 남자(장혁)는 우연히 같은 칸에 앉게 된 여자(차현정)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전형적인 도시 인텔리에 샐러리맨인 남자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꼬여간다. 평범한 작품이지만, 생각과 행동 사이의 괴리와 중산층적인 허세를 코믹하게 그려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4. 유명한 배우들이 여럿 출연해 짧은 이야기들인데도 꽤 볼거리가 많다. 엄정화의 연기는 예의 평균은 하고, 곧잘 껄렁껄렁한 양아치 냄새를 풍기곤 하는 장혁이 나름 번듯한 직장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도 그럭저럭. 어둡고 좁은 집안과 그 공간만큼 밀착한 두 남녀, 김강우와 차수연은 <나, 여기 있어요>에서 건조하면서 애틋한 공기를 잘 전달해 주고 있다. 자기 에피소드 외에 다른 단편에도 숨어있는 배우들을 보는(혹은 뒤늦게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5. 비록 <트랜스포머2> 같은 대작에 비할 수는 없어도, 10억이라는 예산으로 5명의 중견작가와 14명의 배우-황정민, 배종옥 같은 톱클래스에서 신세경, 김동욱 등의 젊은 배우들까지 다양한-로 이런 기획작품을 낸다는 시도 자체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한국영화가 더 재미있는 기획과 이야기로 활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도, 감독들이 말하듯이 다양성의 확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오감도>가 잘 됐으면 좋겠다.












덧글
Hendrix 2009/07/02 01:08 # 삭제 답글
<his concern> 완전히 꽂혔어... 빨리 보고 싶다!!
leopord 2009/07/02 16:11 #
너무 기대는 말고...ㅎㅎ;
Lena 2009/07/02 02:15 # 답글
악 보고싶어요 ;ㅁ; 여기선 개봉 안하겠죠 -_ㅠ 참, 식객 개봉했던데 재미 없을 것 같아서 안가고 있어요 ㅎㅎ
leopord 2009/07/02 16:11 #
<식객>은 좀... (먼산)
異夏夜 2009/07/02 14:43 # 답글
his concern이랑 끝과 시작만 따로 떼어내서 볼 순 없겠지;;한국에서 애정을 소재로한 옴니버스 상업 영화는 진부함의 벼락치기 같은 느낌이 강해서 길이가 짧은데도 끝까지 보고 있기가 힘들어. 흠흠.
leopord 2009/07/02 16:13 #
그런데 각 작품들이 그닥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진 않아서.<새드무비> 하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아직 못 봐서 언뜻 비교하긴 좀 그렇긴 한데, <오감도>는 그 둘 사이의 어딘가 쯤 되는 퀄리티가 아닌가 싶어. 진부한 부분들도 있는데 그걸 그 감독의 클리셰라고 생각하면 그냥저냥 봐줄 수도.
하지만 오기환의 <순간을 믿어요>는 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