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의 연행소식을 듣고 현실정치비판

건국대 학생 대표자들에 대한 무차별 연행을 규탄한다!
(nice dream 님 포스팅)

어제 잡혀간 건국대 학생 대표자 두 명은 모두 내 후배들이다. 둘 다 과 후배로, 총학생회장 하고 있는 하인준은 훤칠한 키에 얌전하게 쓴 안경이 아직 앳된 얼굴을 가리고, 정치대 학생회장인 이태우는 약간 촐싹대는 감은 있어도 잘 웃고 적극적인 녀석이다.

주말 밤샘일이 끝나고 돌아와 느즈막이 누워 서너 시간쯤 자고 일어났을 때 온 MMS-우리학교 대표자들 하인준 학우와 이태우 학우가 경찰에 무차별연행 되었습니다-를 보면서 또 경찰에서 개념없이 잡아갔다가 적당히 시간 끌다 풀어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안일한 생각이지만 지금까지 경찰이 하는 짓을 보면 그럴 것도 같았다. 경찰의 반응이란 게 너무 빤하니까.

스스로 '비권'을 칭하지 않는다면 학생대표자 자리에 설 땐 구속까지 각오해야 했다. 이건 특정 정권만의 문제는 아닌데, 가장 큰 이유는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학생회 구성원이 전부는 아니어도 곧잘 한총련이었기 때문이다(그 쪽에 전혀 소속되지 않는 운동권, 속칭 PD라 하더라도 한총련 탈퇴권유서를 받아야 했다.). 한총련이 유명무실해지고 한대련이 비교적 온건하게 활동하고 있는(물론 한대련이 학생운동의 전부는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학생운동판이라 해도 대표자 자리는 여전히 부담이다.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에,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촛불 밟기를 보았을 때 "나도 구속되겠구나" 생각하지 않을 학생회장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쯤은 각오했다 라고 호기있게 혹은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해도, 각각 분리되어 갇힌 두 사람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대공분실에 갇힌 인준이는,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에 오롯이 마음을 건다고 해도 앞으로가 얼마나 걱정될까. 물론 이들만 잡혀간 것도 아니고 또 몇 번 풀려난 사례도 있으니 그걸로 자신을 안심시킨다 해도, 그곳은 대공분실이 아닌가. 혹시라도 경찰이 공간의 압박감을 이용해 집시법 위반을 "조사결과 반국가단체 관련 운운" 하며 국가보안법으로 엮으려는 시도는 없을까.

2001년 언젠가, 우리학교 부총학생회장이었던 사람이 잡혀간 적이 있었다. 그는 수 번의 재판 뒤 교도소에 구속수감되었다. 아마도 국가보안법 위반이 이유였던 것 같고, 당시 나는 서울동부지방법원 항의방문에 따라갔다. 솔직히 말해 그가 반드시 나왔으면 하는 절박한 마음은 없었다. 풀려나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는 어김없이 형을 살 것이었고, 또 스스로도 그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저, 구속 2,3년에 집행유예 1년이면 짧은 거지 소리를 들으며 아아 그나마 다행이구나 하고 넘길 뿐이었다.

같은 경우가 반복되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후배가, 종종 강의실과 복도에서 마주치며 툭탁대곤 했던 아이들이 잡혀갔다는 건 별로 실감이 나지 않고, 실감 나지 않는 만큼 불편한 사실이다. 대표자라고는 하지만 이제 스물둘셋 밖에 되지 않은, 어떻게 보면 아직도 소년 같은 녀석들이다. 바로 그 소년 같던 나이에 87년 6월 항쟁의 주역들이 활동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그들의 연행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경찰이 예전 관성에 따라 일단 학생들부터 밟고 보는데, 더 이상 학생이 저항운동의 전위가 아닌 지금 상황에서는 큰 재미를 못 볼 일이다. 물론 '고대녀' 김지윤부터 시작해서 촛불과 관련된 학생들을 연행하는 것은 촛불 그 자체를 봉쇄하기 위한 시도로, 당장 사람들에게 겁은 줄 수 있을 것이다. 겁주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만점일테지만, 거기까지다. 그들은 늘 앞을 보지 못한다. 그들 자신의 발목을 휘어감고 있다는 걸 말이다.

후배들이 무사히 풀려났으면 싶다. 총학생회 규탄문에 의하면 소환장도 발부하지 않은 상태였고 현장에서 영장발부가 구두로 고지되었다는데, 법적 근거가 미약한 연행은 단순한 겁주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두 후배들이 상황을 차분하게 풀어내길 바란다. 다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런 생각들이 법에 자신의 안전을 걸고 있는 안일함에 기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우린 그 놈의 '법'에 수없이 농락당했는데.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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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 건 수 올렸구나? - 건국대 학생들의 연행을 규탄한다 2009/07/07 10:10 #

    대학가 수난시대... 경찰 '공안몰이' 시동? - 오마이뉴스 후배들의 연행 소식을 듣고 - leopord 건국대 학생회장들이 대공분실에 갖혔습니다 - 이태우의 여자친구 건국대 학생대표자들에 대한 무차별 연행을 규탄한다! - nice dream 2009년 7월 5일 오후 6시 즈음해서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장 하인준, 정치대 학생회장 이태우, 생활도서관장 어광득이 일제히 연행되었다. 그들은 경찰청 대공분실에서 현재 조사중에 있다. 홍제동에 있는 대공......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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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opord의 무한회귀 : 090709 2009-07-09 23:56:24 #

    ... 가 쏟아지는 덕분에 학교 가는 길따라 바지며 양말이며 홀딱 젖어버렸다. 과방에 총총히 들어가 발 말리고 있으려니 뭔가 한가한 기분이 들었다. 2. 다행히 지난 포스팅(<후배들의 연행소식을 듣고>)에서 이야기했던 두 후배들이 모두 풀려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불구속기소된 상태인만큼 이후에는 꽤 성가신 법적공방이 있을 것 같다. 사건 당사자였던 인준이의 글 ... more

덧글

  • SoulbomB 2009/07/06 16:28 # 답글

    건충 휴학중이지만 저도 이거 보고 폭발할 뻔 했습니다

    아 열받어 -ㅅ-;
  • leopord 2009/07/06 16:32 #

    건충이셨군요. 전 솔직히 좀 무덤덤했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라는 느낌이랄까요-_-;;;
  • 자유로픈 2009/07/06 16:42 # 답글

    정말 마음이 편치 않으시겠군요...공권력이 학생회 대표자들을 잡아 족친 경우는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있었지만, 요즘 정권의 행태를 보면 경찰이 정말로 맘 먹고 조직사건 하나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듭니다...
  • leopord 2009/07/06 20:46 #

    엄청 불편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좀 그래요.ㅎㅎ; 설마 조직사건 나올까 싶긴 하지만,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정권인 만큼-_-...
  • 한단인 2009/07/06 17:49 # 답글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 leopord 2009/07/06 20:47 #

    2009년 7월 현재 일어난 일이라는 게...
  • 중간자 2009/07/06 17:54 # 답글

    상식이라는 단어가 참 낮선 어감으로 느껴지는 요즘이군요.
  • leopord 2009/07/06 20:47 #

    점점 낯설어져요-_-...
  • Tabipero 2009/07/06 20:55 # 답글

    이제는 이런 이야기들 들어도 별로 놀랍지가 않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제오늘 같이 공부하던 학우들이 갑자기 잡혀가 있다니 그 황당함과 안타까움과 가슴아픔이 어느 정도일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어찌되었건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 leopord 2009/07/07 15:43 #

    감사합니다. 잘 풀렸으면 좋겠어요. 포스팅에 써놓았지만, 연행된 당사자들이 상황을 의연하게 견뎌내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도 비상대책위원회 만들어서 부지런히 지원할 수 있었으면 싶어요.
  • MadEye 2009/07/06 21:37 # 답글

    원칙과 법치를 강조하는 쪽에서 법의 기본 원리조차 계속 밟는 것은 정말 모순이지요. 갑갑합니다. 민노당 학위 간부들은 어느 학교이건 거의 위험한 분위기던데 (...)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런 위험을 조성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번 글이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닌 것 같네요.
  • leopord 2009/07/07 15:44 #

    저는 민노당 학위에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그걸 떠나서 이런 식의 위협을 방관하고 있을 순 없겠죠. 경찰은 이럴 때 법의 기본 원리 따위엔 관심도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 검은달빛 2009/07/07 00:40 # 답글

    대공분실.. 이 단어 실제로 뉴스에서 보게 될 줄 정말 몰랐어요. 총학이 연행이나 구속 재판을 당하는 걸 보긴 했는데, 이번엔 대공분실이라니..;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나 봅니다. 답답하네요.
  • leopord 2009/07/07 15:45 #

    대공분실이 아직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참 안일했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 백면서생 2009/07/07 02:00 # 답글

    곧 크리스탈 나흐트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다 해도 별로 놀라지는 않을것 같네요. 문제는 내가 유대인이냐 아리안이냐 인데... 어느쪽이든 결과는 다르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 leopord 2009/07/07 15:45 #

    유대인들이 참 많지요.ㅎㅎ;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 백면서생 2009/07/07 23:15 #

    저는 집시 또는 거리의 부랑자... 집시법 위반자이므로.
  • leopord 2009/07/09 02:27 #

    집시법 위반이기 때문이라니.ㅎㅎ;;
  • 강수영 2009/07/07 04:10 # 답글

    요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지
    선배들의 영웅담이 이상하게 자꾸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 leopord 2009/07/07 15:46 #

    그런 이야기는 정말 '영웅담'으로 충분한데 말입니다-_-...
  • 2009/07/07 23:1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Hendrix 2009/07/08 09:04 # 삭제 답글

    어제부로 불구속처리 되었어.
  • leopord 2009/07/09 02:27 #

    응.
  • 에스키모 2009/07/08 11:16 # 답글

    형 나 왔다간다.
  • leopord 2009/07/09 02:27 #

    헐...
  • dana 2009/07/11 13:54 # 삭제 답글

    기실 종종 글을 훔쳐읽고 가는데
    (남들한테 나는 이런사람도 안다고 자랑도 하고-_-)
    오늘은 글 한줄에 낚여서^^;; 리플 남기고 갑니다.
    "법에 자신의 안전을 걸고 있는 안일함".
    기억할랍니다.
    아이고..숙취야..
  • leopord 2009/07/12 20:25 #

    푹 주무셨길 바랍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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