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용민의 <분노 못 느끼는 20대, '보수화' 보다 무섭다>(오마이뉴스)는 지난 '20대 개새끼론'에 비해 좀 더 순화된 어법을 구사하는 것 같다. 온라인상이었지만 20대 개개인이 느끼는 모멸감과 분노를 나름 접한 탓인지, 20대의 상황을 "만약 나였다 해도" 등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투사해 언뜻 동정적으로 기술한다. 사실 오마이에서 이런 글을 내오는 걸 보고 "오마이가 그럼 그렇지" 식의 반응을 보일 수 있겠는데, 이렇게 계속 20대에 대한 담론장을 제공하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2. 그의 글에 대한 이글루 블로거들의 반응은 여전히 감정적이지만 그 점에서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김용민이야말로 여전히 '조직'의 논리에서, 386의 시선에서 20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건 이해를 하겠지만 너희들은, 너희들의 분노는 조직되어야 한다. 한대련을 봐라. 탄압받는 한대련은 그만큼 국가권력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 학생들이 변혁의 주역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가. 전형적인 운동권 마인드다. 운동권이 악은 아니지만, 이런 논리는 항상 Again 87의 범주에서 맴돈다. 촛불은 안 그랬냐고? 아니라고 말하겠다. 양상이 다르다. 조직화된 집단의 힘이 아닌 것이다. 또, 아직도 '세뇌'라는 표현을 쓰면서 '개념 없고 머리 안 쓰는 20대' 라는 선입견에 빠져있는 이상, 김용민의 글은 20대에겐 도무지 설득력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한대련 애들이나 좀 감동 먹을까.
3. 그런데 여기서 김용민도, 그를 까는 이글루 유저들도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88만원세대는, 워킹푸어는, 20대는 '빈 자리'라는 것이다. 많이들 오해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우석훈·박권일이 <88만원세대>에서 던진 이 화두는 그 자체로 지금의 생물학적 연령을 가진 20대가 아니라, 우리 나이대가 30대가 되고 나면 그 다음에 20대가 될 지금의 10대도 88만원세대가 될 수 있고, 그 다음 역시 마찬가지라는, 현재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면 끊임없이 대물림 될 족쇄라는 것이다. 그러니, 김용민이 빠진 이 함정에 같이 빠져있는 몇몇 유저들, 특히 아슈레이 님이나 천지화랑 님은 김용민을 까면서 20대를 변호하지만 사실은 자기 개인의 변호에 불과하며, 김용민이 던진 프레임에서 논의가 맴돌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다.
4. 예컨대 아슈레이 님의 <분노하지 못하는 20대? 좃까~>에서 언뜻 나타나는 사적인 토로는 지금 우리 나이대의 본심을 어느 정도 드러낸다 : 저는 취업, 커리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남들보다 공부 열심히 하고 좀더 앞서 나아갔다면 당연히 돈 잘벌고, 좋은 직장 가지게 마련입니다. 대학시절 놀거나, 이런저린일로 시간을 허비했다면 당연히 돈 덜 벌고 열심히 한 사람에 비해서는 좋은 직장은 못가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현실을 가장잘알고 있는게 지금의 20대입니다.
굉장히 쉬운 논리이지만 보통 취업을 한 우리 또래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감은 된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는 건, 경제난이 계속되는 이 무한경쟁시대에 취업과 커리어가 온전히 개인의 몫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저 남보다 공부 열심히 하고 앞서 나가기에 성공하는 것일까? 성공이 미리 결정된 사람들(대표적으로 강남 아이들)과 지방 하류층 출신인 사람이 단순비교가 될 수 있을까? 또, 이건 우석훈·박권일이 걱정했던 대로 이 말 자체가 세대 내 경쟁을 암시하는, 취업이 된 사람과 되지 않은 사람 및 같은 직장의 비슷한 직급들끼리의 경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걸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지 않을까.
또, 천지화랑 님은 <왜 20대는 분노하지 못하는가?>에서 어른들(여기서는 주로 386)이 운동의 성공가능성을 20대에게 보여주지도 못했고, 더 나아가 현실에 순응할 것을 강요했기 때문에 김용민식의 비난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한다. 전연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오히려 놓치고 있는 점은 운동이란 성공함으로써 성장하는 게 아니라 실패함으로써 성장한다는 점이다. 그가 제시한 사례들-두발제한 폐지운동과 01년의 상문고 재단비리, 04년 대원외고 등교거부 등-은 청소년운동에서 종종 겪는 실패와 그로 인한 운동 주체의 박탈감, 피로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것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 감상을 지나치게 일반화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요컨대 운동의 실패 자체보다 운동 주체들의 박탈감과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완충망-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줄 어른이든, 청소년 운동 주체들이 온전히 스며들 대안학교든-이 없다는 게 문제다. 비판의 촛점은 이 완충망의 부재에 뿌리를 둬야지, 운동 자체의 성패에 둬서는 안 될 게다.
5. 어떤 면에서든 지금의 20대 담론은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세대>의 잡다한 해석인 것 같다. "20대여, 토익책을 내려놓고 짱돌을 들어라" 에서 이 '짱돌'을 단순히 저항이나 분노로 해석하고 그저 "왜 20대는 분노를 하지 못하는가" 라는 식의 질타가 386 아저씨 감성과 만나면 김용민이 되는 거고, "짱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고 토익책에'만' 매진하면 김용민이 비난하는 '20대 개새끼'가 되는 것이다. 이 둘은 결코 다른 게 아니라 끝내 같은 것이다. 꼬리를 무는 뱀처럼 끝나지 않는 고리에 불과하다.
6. 20대는 20대 담론을 넘어야 하고, 삶의 더 나은 터전을 만드는 것이 분노보다 더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 지금 20대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마냥 분노하는 게 아니라, 세대와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삶의 장을 만드는 게 아닐까. 분노는 오히려 차고도 넘친다(같은 맥락에서 분노가 인터넷에서 활발하다는 아슈레이 님의 지적은, 인터넷만이 분노의 오롯한 공간이라는 걸 드러낸다는 점에서 적확하다.). 20대의 주요 문제인 입시경쟁과 취업전쟁, 안정적인 경제생활 부재 및 불확실한 노후는 무조건 분노만 한다 해서 해결될 것이 아니다. 대안이 형성될 전제로서의 분노와, 이 분노가 혼자만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의 집합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지만, 김용민식의 '조직화된 분노'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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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rd, <20대론을 못 넘는 20대 : 여전히 세대 사이의 잉여로 남을 위험>
2. 그의 글에 대한 이글루 블로거들의 반응은 여전히 감정적이지만 그 점에서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김용민이야말로 여전히 '조직'의 논리에서, 386의 시선에서 20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건 이해를 하겠지만 너희들은, 너희들의 분노는 조직되어야 한다. 한대련을 봐라. 탄압받는 한대련은 그만큼 국가권력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 학생들이 변혁의 주역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가. 전형적인 운동권 마인드다. 운동권이 악은 아니지만, 이런 논리는 항상 Again 87의 범주에서 맴돈다. 촛불은 안 그랬냐고? 아니라고 말하겠다. 양상이 다르다. 조직화된 집단의 힘이 아닌 것이다. 또, 아직도 '세뇌'라는 표현을 쓰면서 '개념 없고 머리 안 쓰는 20대' 라는 선입견에 빠져있는 이상, 김용민의 글은 20대에겐 도무지 설득력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한대련 애들이나 좀 감동 먹을까.
3. 그런데 여기서 김용민도, 그를 까는 이글루 유저들도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88만원세대는, 워킹푸어는, 20대는 '빈 자리'라는 것이다. 많이들 오해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우석훈·박권일이 <88만원세대>에서 던진 이 화두는 그 자체로 지금의 생물학적 연령을 가진 20대가 아니라, 우리 나이대가 30대가 되고 나면 그 다음에 20대가 될 지금의 10대도 88만원세대가 될 수 있고, 그 다음 역시 마찬가지라는, 현재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면 끊임없이 대물림 될 족쇄라는 것이다. 그러니, 김용민이 빠진 이 함정에 같이 빠져있는 몇몇 유저들, 특히 아슈레이 님이나 천지화랑 님은 김용민을 까면서 20대를 변호하지만 사실은 자기 개인의 변호에 불과하며, 김용민이 던진 프레임에서 논의가 맴돌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다.
4. 예컨대 아슈레이 님의 <분노하지 못하는 20대? 좃까~>에서 언뜻 나타나는 사적인 토로는 지금 우리 나이대의 본심을 어느 정도 드러낸다 : 저는 취업, 커리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남들보다 공부 열심히 하고 좀더 앞서 나아갔다면 당연히 돈 잘벌고, 좋은 직장 가지게 마련입니다. 대학시절 놀거나, 이런저린일로 시간을 허비했다면 당연히 돈 덜 벌고 열심히 한 사람에 비해서는 좋은 직장은 못가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현실을 가장잘알고 있는게 지금의 20대입니다.
굉장히 쉬운 논리이지만 보통 취업을 한 우리 또래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감은 된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는 건, 경제난이 계속되는 이 무한경쟁시대에 취업과 커리어가 온전히 개인의 몫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저 남보다 공부 열심히 하고 앞서 나가기에 성공하는 것일까? 성공이 미리 결정된 사람들(대표적으로 강남 아이들)과 지방 하류층 출신인 사람이 단순비교가 될 수 있을까? 또, 이건 우석훈·박권일이 걱정했던 대로 이 말 자체가 세대 내 경쟁을 암시하는, 취업이 된 사람과 되지 않은 사람 및 같은 직장의 비슷한 직급들끼리의 경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걸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지 않을까.
또, 천지화랑 님은 <왜 20대는 분노하지 못하는가?>에서 어른들(여기서는 주로 386)이 운동의 성공가능성을 20대에게 보여주지도 못했고, 더 나아가 현실에 순응할 것을 강요했기 때문에 김용민식의 비난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한다. 전연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오히려 놓치고 있는 점은 운동이란 성공함으로써 성장하는 게 아니라 실패함으로써 성장한다는 점이다. 그가 제시한 사례들-두발제한 폐지운동과 01년의 상문고 재단비리, 04년 대원외고 등교거부 등-은 청소년운동에서 종종 겪는 실패와 그로 인한 운동 주체의 박탈감, 피로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것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 감상을 지나치게 일반화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요컨대 운동의 실패 자체보다 운동 주체들의 박탈감과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완충망-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줄 어른이든, 청소년 운동 주체들이 온전히 스며들 대안학교든-이 없다는 게 문제다. 비판의 촛점은 이 완충망의 부재에 뿌리를 둬야지, 운동 자체의 성패에 둬서는 안 될 게다.
5. 어떤 면에서든 지금의 20대 담론은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세대>의 잡다한 해석인 것 같다. "20대여, 토익책을 내려놓고 짱돌을 들어라" 에서 이 '짱돌'을 단순히 저항이나 분노로 해석하고 그저 "왜 20대는 분노를 하지 못하는가" 라는 식의 질타가 386 아저씨 감성과 만나면 김용민이 되는 거고, "짱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고 토익책에'만' 매진하면 김용민이 비난하는 '20대 개새끼'가 되는 것이다. 이 둘은 결코 다른 게 아니라 끝내 같은 것이다. 꼬리를 무는 뱀처럼 끝나지 않는 고리에 불과하다.
6. 20대는 20대 담론을 넘어야 하고, 삶의 더 나은 터전을 만드는 것이 분노보다 더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 지금 20대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마냥 분노하는 게 아니라, 세대와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삶의 장을 만드는 게 아닐까. 분노는 오히려 차고도 넘친다(같은 맥락에서 분노가 인터넷에서 활발하다는 아슈레이 님의 지적은, 인터넷만이 분노의 오롯한 공간이라는 걸 드러낸다는 점에서 적확하다.). 20대의 주요 문제인 입시경쟁과 취업전쟁, 안정적인 경제생활 부재 및 불확실한 노후는 무조건 분노만 한다 해서 해결될 것이 아니다. 대안이 형성될 전제로서의 분노와, 이 분노가 혼자만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의 집합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지만, 김용민식의 '조직화된 분노'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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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rd, <20대론을 못 넘는 20대 : 여전히 세대 사이의 잉여로 남을 위험>












덧글
stcat 2009/08/03 00:13 # 답글
문제는 분노할 여유를 안주는 세상 'ㅅ'
leopord 2009/08/03 00:15 #
동감.
주객 2009/08/03 14:07 #
언제는 뭐 여유가 있어 분노했던 세대가 있었나요?배부른 소리...
leopord 2009/08/04 15:14 #
주객 님// 슷캇 님이 분노를 안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만큼 실천적으로 사는 분이니 "배부른 소리" 운운 하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만약 20대가 격하게 반응한다면 가끔씩, 주객 님처럼 너무 쉽게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아닐까 전 생각합니다.
stcat 2009/08/04 18:52 #
이 시츄에이션은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는데...어라?
2009/08/03 00:1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8/03 00:17 #
네. 분노하여 무얼 하느냐, 이걸 못 찾아서 혹은 하기가 두렵고 힘들어서 다들 난감해 하지 않나 싶어요.
2009/08/03 00:50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8/03 01:15 #
아 카쉬전에 출품했었구나. 지나치며 한 번쯤은 봤을 수도 있겠다.그게 참 재밌던데.ㅎ 센스가 장난 아닌데?ㅋ 술자리 잡담이 으레 그런건가.ㅎㅎ 뭐 일단 먹고사니즘의 위력이란ㅋ
사실 이 글의 타겟은 김용민 아저씨만은 아니어서...
2009/08/03 01:3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8/03 02:42 #
어머님이 참 뼈 있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거 같군요.ㅎㅎ; 역시 먹고사니즘이 짱...-_-;;
WeissBlut 2009/08/03 01:43 # 답글
결과적으로 어느쪽이건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건 마찬가지입니다. 20대가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는게 가장 이상적인 모범답안이겠지만 20대에게서 스스로 앞길을 개척할 적극성을 앗아간건 다른 누구도 아닌 386세대에요. 이런 말조차도 핑계에 불과하겠지만요.
leopord 2009/08/03 02:43 #
스스로 제시하는 대안 개념으로 '희망청' 이라던가 '노리단'을 들이대기엔 아무래도 사례가 부족하죠. 저도 좀 차근히 추적(?)해 보고 싶습니다.ㅎㅎ;
자유로픈 2009/08/03 05:03 # 답글
저도 '20대 개새끼론'의 프레임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못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88만원 세대>를 읽어보지 않은지라 잘 모르고 있었는데, 적확하게 지적해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leopord 2009/08/03 13:13 #
여담이지만 '한국 대안경제 시리즈'는 <88만원세대> 밖엔 읽지 않아서, 조만간 <촌놈들의 제국주의>랑 <괴물의 탄생>을 봐야지 생각만 하고 안 읽고 있어요.-_-;;; 읽고 있는 거랑 읽겠다고 생각하는 것만 치면 한 가득;
2009/08/03 05:3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8/03 13:29 #
포스팅에도 언급했지만 '386의 시선으로' 20대를 재단하는 글이어서 그랬다고 봐요. 그가 정말로 386세대에 속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요.김용민 씨 자신은 꽤 완고해서, 자신의 '20대 무망론'을 바꿀 생각이 없어보여요. 그에 대한 격한 감정적 반응에 쿨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자신의 심증만 굳힐 뿐이구요. 그래서 결국 김용민 씨나 그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20대나 같은 프레임에서 맴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좌파논객 2009/08/03 08:52 # 답글
제 머리 속에 맴돌던 것들을 님께서 잘 정리해주셨네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leopord 2009/08/03 13:29 #
좌파논객 님 가끔씩 이글루 이곳저곳에서 뵈었는데요.ㅎ 감사합니다.
아슈레이 2009/08/03 11:48 # 답글
저랑은 조금 다른 의견이군요. leopord님 비판 감사합니다.
leopord 2009/08/03 13:29 #
아슈레이 님과 다른 관점에 서다보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hammer 2009/08/03 12:49 # 답글
공감하는 바입니다.
leopord 2009/08/03 13:30 #
전 이 죽일 놈의 20대 개새끼론 이러고 있답니다-_-;;;
나아가는자 2009/08/03 19:21 # 답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대안이 형성될 전제로서의 분노와, 이 분노가 혼자만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의 집합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지만, 김용민식의 '조직화된 분노'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라는 맨 마지막 문장이 잘 읽히지 않네요. 그러니까, '연대'와 '조직화'사이에 어느정도의 간극(80년대 운동권조직과 같은 상명하복구조)을 어느정도 알긴 하지만, 그 본질적 의미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연대는 조직을 만들어야 장기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요? 조직의 구성방식이 다르다고 해도 말입니다.
leopord 2009/08/03 22:08 #
음. 사실 마지막 구절은 '80년대 운동권 조직과 같은 상명하복구조의 조직'에 대한 반감 때문도 있고요.ㅎㅎ; 그런데 전 연대와 조직화는 상당한 온도차가 있다고 봐요. 조직이 없어도 연대는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예컨대, 한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주민'으로 묶어주는 근본은 주민회가 아니라 마을 그 자체라는 거죠. 주민회라던가 구·시의회나 의원 등은 조직체이고 대의체이며 그 자체로 정치적인 역할을 하지만,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정서적이고 물리적인 기반으로서 마을이 없이는 불가능하죠. 또 마을과 마을을을 잇는 정서적인 네트워크도 그렇구요.이 마을을 조직으로 볼 거냐면 전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시민단체 조직이라던가 운동단체 조직은 어느 정도 기업화된-혹은 기업을 모델로 한, 더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합리적인 기계조직인 군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조직론에 근거하고 있는데 반해서요. 그런 단체들도 필요하지만 '연대=조직화' 라는 도식은 자칫 연대를 끊임없는 조직론의 범주로 묶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지화랑 2009/08/03 22:44 # 답글
전 어디까지나 그냥 용산에서 캐리어나 끼릭끼릭 끌고 다니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주절주절 읊어봤을 뿐입니다. 이런 차분한 글에서 예시로 거론되다니 부끄럽군요.아니, 사실은 6살때부터 시작된 감상이랄까요.
leopord 2009/08/03 23:07 #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생활형 글이 요로코롬 책상머리에서 쓴 것보다 현실감은 더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적한 부분은 그 점이 물론 아니지만. 이 글이 어떤 소소한 조망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6살 때부터라니, 너무 오래되었잖아요.ㅎㅎ;
유로스 2009/08/04 00:05 # 답글
김용민 교수는 아직도 저러고 있군요. 정말 철없는 30대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leopord 2009/08/04 00:42 #
ㅎㅎ; 마지막 말씀이 콕 찌르는데요?ㅎ
2009/08/04 13:34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leopord 2009/08/04 15:12 #
그런데 사실 조건만 얘기하면 될 것도 안 되는 것이 사람 일인지라... 너무 비관하거나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요.ㅎ
여울바람 2009/08/06 17:54 # 삭제 답글
긴 댓글은 스팸 차단 당하는 건가요? ;ㅁ;
leopord 2009/08/06 18:48 #
엇?;;; 여기 그런 시스템도 있었어요?;;; 아닐텐데; non valid 어쩌구 뜨는 거라면 그냥 브라우저를 한 번 껐다가 켜보는 것이.ㅎ;;
-_- 2009/08/09 20:44 # 삭제 답글
김용민의 문제제기는 88만원 세대론과 별개로 보아야 합니다.예를 들어
http://www.realmeter.net/chart/chart.asp?table_name=H_Favorable_Per
에서 20대들이 차기대통령으로 박근혜를 열렬히 지지하는 현상은 88만원 세대나
비정규직 세대들과는 관련이 없거든요.
설문에 응한 20대들이 뭘 몰라서 박근혜를 지지하기보다는
미디어법에서 보여준 배신배반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거나
아니면 차기대선주자 지지설문을 수능문제 풀듯이
차기대선주자 당선가능률 설문으로 오도했던 모양입니다.
10년간의 소위 좌파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으로서
정치적 '비행'을 일상적으로 해대는 젊은이들이 꽤 많다고 생각합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정치적 일탈세대'들이 우리 동시대인 전부를 다시금 5년의 한나라당 집권이라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이끌고 있고,
이걸 모두가 두려워 하는 상황이라고 보셔야 합니다.
이미 40대 50대 정부나 학계에 있는 사람들 박근혜에 대해 함부로 비판을 하거나
대립하는 위치에 서는 것을 피하고 있습니다.
20대의 정치적 선택을 단순히 의미없는 '무한경쟁'에서 오는 피로감으로 보기에는
그들의 결정이 가져오는 결과가 너무나 터무니 없습니다.
여울바람 2009/08/09 20:52 # 삭제
결론은 '이 모든 것은 20대 때문이다'라군요. 제물이 있으니, 참 마음이 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