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론 독서가 끝나고 난 뒤

여전히 '혁명'은 불온한 말이다. 그 말이 품고 있는, 권력 획득을 향한 강렬한 파토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파괴. 폭력을 수반하기 마련인 혼란. 혁명에 대한 가장 맹렬한 이미지는 1789년 프랑스 혁명과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나왔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혁명에 대한 환호와 거부는 폭력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종종 단순화되고 오해되었다. 이런 '폭력=혁명' 이라는 도식은 혁명의 의미를 좁힘으로써 변혁의 가능성을 막거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개혁 혹은 개량의 범주 안에 혁명을 묶어버리는 시도로 이어지곤 한다. 하물며 쌍용자동차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용공분자'로 몰고,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저항을 '국가전복행위'로 탈바꿈하는 '지금/여기'야 더 말할 것이 없다(경향신문, <'쌍용차 사태' 64명 구속…12년만에 최대 공안사건>).

그럼에도 혁명에는 피를 끓게 하는 그 무언가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혁명이라는 현상 자체가 근대를 만들어온 역사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혁명은 권위주의 정부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선전수단도 아니고, 변화를 과장해서 기업가의 아이디어를 장식하기 위한 말꾸밈 역시 넘어선다. 근대는 혁명으로 시작되었다. 혁명 자체가 '새로운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혁명론>(홍원표 옮김 / 한길사, 2004)을 통해 혁명 개념의 역사적 기원을 탐색하고, 혁명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며 부상하고 좌절되었는가를 설명한다. 그녀의 '이야기하기'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이라는 두 가지 사례를 대비함으로써 혁명의 본뜻을 풍부하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결론적으로, <혁명론>은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제시한 '인간의 조건' 중 마지막인 '행위'(Action)에 대한 이야기다. 다양한 개인 간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말과 행동인 이 행위는 곧 정치행위이며, 공론 영역에서의 활동 이외의 진정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개인의 신체와 재산을 보존하고 정서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보호막으로서의 '사적 자유'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아렌트가 말하는 '자유'(Freedom)란 참여의 자유이며, 자기 자신을 고스란히 노출하며 불멸하는 영광을 구하는 아고라(포룸)의 민주정의 자유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아렌트의 통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미국 혁명이다. 이 '미국 혁명' 이라는 현상과 개념은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다. 아렌트는 '독립선언서'로 상징되는 해방전쟁과 건국행위가 혁명사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에 비해 과소평가되거나 혹은 너무나 특이한 예외로 우상화되었을 뿐, 미국의 혁명정신과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나 비판적 검토가 부재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실패한 혁명이랄 수 있는 프랑스 혁명이 오히려 주요한 혁명 전통이 되어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반복되는 것은 사회·경제적 조건의 유사성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프랑스 혁명은 혁명의 전례로서 너무나 많은 약점과 과오를 갖고 있다는 것이 노출된다.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필연성'이다. 절대군주제에 대한 반역이었던 프랑스 혁명은 루이 16세에게 바스티유 감옥 함락을 알린 라 로슈푸코 공작의 말대로 "반란이 아니라 혁명"이었다. 본래 '별들의 거스를 수 없는 운행'을 의미했던 이 천문학 용어(혁명)는 불가항력적인 우주적 힘에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지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프랑스 혁명의 비극은 해방이 곧 자유로 이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전제정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룬 뒤에는 빈곤(생존의 필연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루려고 한 일련의 시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또한 누구보다도 도덕적이었고 자신에게 엄격했던 로베스피에르가 '자유의 전제정'을 내세우며 '공포정치'를 실행했다는 역설 역시 설명된다. 인민에 대한 한없는 연민은 분명 미덕이지만, 이 미덕이 정치의 세계에 들어선 순간 끊없는 의혹과 의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 되면서, 또 루소의 '일반의지'(General Will) 개념에 근거한 인민주권론이 '하나의 의지로 통합된 다수'라는 '대중의 전제정'-이 말은 민주정에 대한 고대적인 환멸을 뜻한다-을 암시하면서 혁명 정당-혁명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근대 정당은 프랑스 혁명에서 싹텄다-에 의한 일당독재는 그렇게 혁명을 망가뜨렸다.

미국 혁명은 뚜렷이 대조적이다. 물론 우연과 행운이 건국 선조들(The Founding Fathers)에게 따랐다는 걸 무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식민지 주민들은 루이 16세 치하의 프랑스 빈민들과 같은 필연성(빈곤)에 묶이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풍요로웠다는 것이 최대의 혜택이었다. 결코 부자는 아니었지만 자기 손으로 제 밭을 갈며 그럭저럭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는 개척민들은 빈곤이라는 불운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지점은 군사적 성공과 성취감, 사기 등은 표면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1775년 시작된 해방전쟁은 몇 년 뒤 끝났지만,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미국 혁명에서 주목하는 지점 역시 바로 여기다. 혁명이란 본질적으로 시민이 자기를 드러내는 공간을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건국 선조들의 제헌의회 활동은 전쟁과 거의 동시에 이뤄졌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건국 선조들에게는 해방과 자유를 동일시하지 않은 통찰력도 주요했지만, 그들은 권력이란 다양한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고, 거기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헌법이라는 걸 알았다.

아렌트는 존 애덤스, 제임스 매디슨 등의 이론가들, 특히 토머스 제퍼슨의 공화주의적 식견을 높이 평가하면서, 혁명 정신에 대한 그들의 통찰력과 '행위'가 혁명을 어떻게 성공시켰는가에 주목한다. 그들은 건국의 교훈을 고대, 무엇보다 로마 공화정에서 찾음으로써 프랑스 혁명가들이 처했던 '절대성'의 문제-신의 자리를 대체한 절대왕정을 또 다시 대체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건국 행위 자체가 건국자 자신에게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굳이 신 혹은 절대군주 혹은 '인민'을 빈 자리에 채움으로써 인민의 무오류성이라는 착각에 휩쓸린 프랑스 혁명의 길을 밟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혁명론>은 미국 건국 선조들에 대한 단순한 예찬론이 아니다. 왜냐하면 건국 선조들조차-제퍼슨을 제외하고는-혁명 과정에서 진정으로 혁명적인 것을 부차적인 존재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마을(town)이다. 식민지 이주자들이 구성한 마을 공동체는 약속과 합의로 엮인 공간이었고, 여기서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시민들 간의 네트워크로 존재했다는 물리적·상상적 유대가 일찌감치 영국 왕실에 대한 독립심으로 연결되는 건 자연스러웠을 게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이 자치의 공간이었고, 참여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카토는 '카르타고는 섬멸되어야 한다'(Cartago delena est)는 말로 모든 연설을 마쳤다. 마찬가지로 나는 '카운티를 구(wards)로 분할하자'는 권고와 함께 모든 의견을 마무리짓는다"(p.382)

인용된 제퍼슨의 편지글은 풀뿌리 민주주의야말로 혁명과 권력구성을 지탱해줄 뿐만 아니라, 구성된 권력 그 자체라는 걸 드러낸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국 선조들은 다른 나라의 혁명 전위들과 비슷하게 주민자치와 자율적 결사체의 힘을 과소평가했다. 프랑스는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했다. 파리 코뮌들이 중앙집중적인 대의구조와 대립함에 따라, '인민의 대표자들'은 인민의 이름으로 '인민의 결사체'를 분쇄해야 했다. 똑같은 경험이 1917년 러시아에서도 반복되었다. 레닌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를 선언한 지 몇 개월 뒤, 인민 대중의 소비에트(평의회)는 볼셰비키의 중앙집중적인 운영과 충돌했고 "공산주의 없는 소비에트"를 표방한 크론슈타트 반란으로 소멸했다. 소비에트 없는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은 분명히 기만이지만, 이는 '사악한 공산주의'나 '이마에 뿔이 난 레닌' 때문이라기보다, 대의제 권력이 안고 있는 약점, '과두제의 철칙'(정치체제에 관계없이 모든 권력은 소수가 장악한다는 믿음)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이 현실태로 존재했지만, 대의제와 중앙집중적인 관료제로 작동하는 국민국가의 탄생으로 좌절되었다는 사실은 인류가 겪은 치명적인 상처이기도 하다.

아렌트가 미국 혁명에서 도출하려고 했던 혁명정신은 바로 이 자율 공동체의 건설과 유지, 확장이었다. 미국은 이 자율 공동체의 힘을 망각함으로써 혁명 정신을 망각했고, 그 결과 미국이 전 지구적으로 벌이는 폭력은 항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데에 비극이 있다. 아렌트는 맑스주의적인 계급혁명론과 거리를 둔, 자칫 (부르주아) 시민혁명론 정도로 이해될 수 있는 <혁명론>을 통해 작은 공동체의 탄생과 이들 간의 연결(네트워크)을 통해 전통적인 계급혁명을 거부한 대신 오히려 더욱 급진적인 혁명론을 제시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토머스 제퍼슨이 말한, "카운티를 구로 분할하자"는 권고는 노자(老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도 그렇다(이 소국과민을 아나키즘과 접합시키는 게 옳은지, 전통적 공화주의와 접합시키는 게 옳은지 내겐 여전히 난감하다.).

혁명을 단순한 전복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새로운 시작이자 '탄생'으로 이해하는 한, 혁명은 여전히 강렬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아렌트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열기가 유럽의 혁명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질서'로 변화할 가능성을 지켜보면서 20세기가 여전히 '혁명의 시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20세기는 이미 지나갔고 그녀의 예상은 빗나간 것 같지만, 네트워크와 구성권력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렌트 정치철학이 뚜렷하게 드러난 <혁명론>은 21세기에도 정치학의 교과서로 꾸준한 생명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녀가 소포클레스의 시구로 말을 끝냈듯이, 서평 역시 그녀의 말로 끝을 맺는 게 좋겠다. 아렌트의 고민은 여전히 '자유'에 집중되어 있다. 그녀에게 혁명이란 자유를 향한, 참여를 향한 열망 그 자체다.

"태어나지 않은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의미를 능가한다. 일단 태어나면 삶의 차선책은 온 곳으로 가능한 한 신속히 가는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여기서 아테네의 전설적인 건국자이며 대변자인 테세우스(Theseus)의 입을 통해 젊은이와 나이 든 이를 포함한 모든 보통 사람들에게 삶의 부담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리고자 한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행위와 살아있는 언어를 가능케 하는 공간인 폴리스는 삶에 우아함을 제공할 수 있었다.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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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opord의 무한회귀 : 막간의 책 이야기 2009-08-14 01:51:53 #

    ... 1. 벌써 8월이 반쯤 지나가고 있다. 방학도 거의 끝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은 참 새삼스럽게 빠르다. 2. &lt;인간의 조건&gt;과 &lt;혁명론&gt;에 이어, 다음 책 세미나는 토마스 모어의 &lt;유토피아&gt;다. 주경철 씨 번역은 옮긴이 서문이 간결한 것부터 마음에 든다. 해제도 별로 길지 않고 본문 자체가 얇 ... more

덧글

  • duripop 2009/08/12 11:14 # 삭제 답글

    토크빌이나 아렌트를 읽으면 자율적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알겠는데 한 가지 미국 중앙 정치가 그닥 민주적인지 모르겠단 말이죠...
  • leopord 2009/08/12 15:47 #

    아렌트는 그것 역시 혁명 정신을 망각함으로 인한 폐해로 보는 것 같던데요. 토크빌도 조만간 읽어야겠어요.ㅎ; (이 '조만간'은 과연 언제쯤일려나.ㅎㅎ;)
  • 백면서생 2009/08/12 13:19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책을 많이 읽으셨군요. 존경스럽습니다.
  • leopord 2009/08/12 15:47 #

    원래는 지난 주에 서평까지 끝내야 했던 것을, 너무 지체해 버렸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부끄러워집니다. OTL
  • 자유로픈 2009/08/14 03:19 # 답글

    최근에 조선후기 이후 일제시기, 해방과 점령, 전쟁 시기까지 이어지는 기간 동안 한국사회에 존속하고 있었던 마을 단위 자율공동체의 역사(농촌에서의 동계洞契, 도시에서의 동회洞會)를 좇는 사회사 연구를 공부한 바 있는데요, 본 서평을 읽으니 감상이 남다르네요.

    전근대 시대부터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왔던 동계, 동회 등의 마을 단위 자치공동체가 식민과 해방/점령, 전쟁에 이르는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국가권력과 길항하다가 결국 해체되는 역사상은 최근에야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시기 총독부의 전시동원체제에도 불구하고 명맥을 유지했던 자치공동체들은, 결국 해방과 점령,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국민국가(특히나 독재적이기까지 했던)에 의해 해체됩니다. 농촌에서의 동계는 담당해왔던 행정적, 재정적 권한을 내주고 친목모임 성격으로 약화되고, 도시의 동회는 미군정에 의해 해체됩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에 의해 자율성이 철저하게 억압된 동사무소 체제로 변화하게 되지요. 최근에 주민자치센터로 바뀌는 과정은 그나마 조금씩 자율성을 살리는 방향이겠지요.

    흔히 한국민주주의의 출발을 논할 때 '시민사회의 부재'와 '강력한 관료제'를 대비시키곤 하는데, 쉽게 단정지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시민'과 '주민'의 개념은 엄밀하게 보면 다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한국민주주의 역시 '중앙집중적인 관료제'에 의해 자율성을 지녀온 풀뿌리 조직들이 해체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비록 레오폴드님이 단언하신 바와 같이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이 현실태로 존재했다고까지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여기지만, 그래도 최소한 선택 가능한 기반은 있었던 셈일런지요.
  • leopord 2009/08/15 16:31 #

    비슷한 맥락에서 국문학자 천정환의 <대중지성의 시대>도 다뤄질 거 같아요. 일제 시대 '대중지성'의 존재를 통해, 당대가 하향식 권력(지식)관계의 엘리트주의를 일반적인 조건으로 깔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대중들의 지식욕구를 '연대'와 '소통'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를 암시하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과방에 두 권이나 비치되어 있는데 탐만 내고 아직 안 보고 있네요.ㅎㅎ;

    말씀하신 동계와 동회는 흥미롭네요. 해방 초기 여운형이 대표했던 인민위원회와도 관계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는 어땠을까요? 마을공동체가 직접민주주의의 현실태라는 단언은 사실 아렌트의 말을 반복한 것에 불과해요. <인간의 조건>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아렌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조건으로서 말을 통해 남과 소통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을 행위로 보고, 권력은 이 소통의 관계망에서만 존재하며, 그 어떤 결과보다 이 과정 자체가 정치라고 보거든요. 아렌트가 미국 혁명 성공의 핵심요건을 구역(districts), 카운티, 군구(townwards)에서 찾는 것도 그런 맥락이고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동계, 동회의 역사-종종 그래왔듯 좌절의 역사이기도 하는-가 있었다는 게 생소하면서도, 박세길류의 역사개설서에서 막연히 나왔던 '인민의 자치'가 선전적인 의미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 대중의 생활 속에서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연구가 진행되었으면 좋겠어요.ㅎ
  • 자유로픈 2009/08/15 23:49 #

    <대중지성의 시대>는 몰랐던 책이군요. 메모해두어야겠어요. 고맙습니다.

    레오폴드님이 예상하신 바대로 동회와 동계는 건준과 인민위원회의 결성에 중요한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해방직후에 도시와 지방에 매우 빠른 속도로 도시군면 단위의 인민위원회가 건설될 수 있었던 이유가 동회와 동계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동회나 동계의 지도자가 그대로 인민위원회의 장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인민위원회가 좌우합작으로 조직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의식적으로 그를 지향해서이기보다는 자치공동체의 속성 자체가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방공간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자치공동체 조직을 영향력 하에 두기 위해 부심합니다. 해방공간에서 자치공동체는 총독부가 그러했던 것처럼 좌우에 의해 동원의 기제로 활용됩니다. 그래서 관련된 연구들에서는 중앙정치와 주민을 매개하는 동계와 동회의 '중간지도자들'(대개 지역유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곤 합니다.


    동계나 동회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된 만큼,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무엇보다 동계와 동회 내부의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작업이 미진한 상태입니다. 아렌트가 중요하게 여긴 그 과정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가 하는 점은 저도 궁금합니다. 제가 동회와 동계와 관련하여 '현실태로 존재했다고까지 보기는 힘들다'고 여기는 이유도 이 점에 대해 거의 규명되지 못한 상태라 단언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동회를 다룬 대표적인 연구성과는 이미 출간되었습니다. 서지사항은 김영미, <동원과 저항-해방전후 서울의 주민사회사>, 푸른역사, 2009입니다.
  • leopord 2009/08/16 17:42 #

    혹시나가 역시나, 건준·인민위원회와 관련이 있었군요.ㅎㅎ 말씀하신대로 동계·동회가 군정이나 남로당의 정치계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사례도 많을 거 같아요. 아렌트는 대의제와 관료제로 상징되는 근대 권력, 특히 전체주의적 권력작동방식이 혁명 전위와 자치공동체 사이의 대립을 만들어 자코뱅 당이 코뮌을 제압하고 볼셰비키가 소비에트를 제거한 역사가 발생했다고 보는데요. 해방 전후의 동계·동회도 비슷한 운명이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책은 일단 체크해야겠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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