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사를 읽고 든 생각 : 담론의 차원에서 보는 자본주의 단상 현실정치비판

"美 경제 '2차 붕괴' 온다…개미들이여, 저축하라"
([이야기가 있는 경제] 프레시안 이항구 기자)


1. 재작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작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신자유주의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이 줄을 이었다. 나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언을 계속 믿고 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세계 금융시장이 CDO(부채담보부증권) 등 파생금융상품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점이었다(<3월 18일의 뉴스촌평>). 월스트리트도 그렇고 우리나라 금융권도 그렇고 금융위기에 대한 경각심에 차 있어야 할텐데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리는 듯한 행태를 보여왔다는 점에서(<우리나라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 정말 부끄러운 줄 모르는군요>), 이들이 경기순환의 관점에서 경기가 바닥을 치고 솟구칠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2. 아닌 게 아니라 경기는 분명 회복세를 보이는 것만 같다. 이항구 기자가 소개하고 있듯이 미국의 구매관리자지수는 지난해 1월 이후 처음으로 50을 넘어섰고, 우리나라의 경우 코스피지수가 회복되고(3월 900대 -> 9월 2일 현재 1613.16),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판매실적도 개선되고 있다 한다. 즉, 이미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는 기대감이 생길 법하다. 이 때, <현명한 투자자가 알아야 할 돈에 관한 진실>의 저자인 김항주 씨의 "주식시장이 폭락 직전 마지막으로 희생자들의 힘을 받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를 짜게 식힌다. 모기지 채권을 운용한 전직 트레이더, 그것도 워싱턴뮤추얼이라는 거대 금융기업에서 일한 베테랑의 글이라는 점에서 어찌 보면 내부고발 같은, 역설적인 느낌도 든다(하지만 이런 책을 낼 수 있는 건, 결국 이런 변절한(?) 베테랑들이다.).

사족 : 이항구 기자와의 인터뷰를 보면 주식시장에 대한 김항주 씨의 입장은 합리적기대가설(REH)에 가깝되 주식투자 자체를 불신하는 것 같고,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전체적으로 루비니 교수의 비관론에 동조한다.

3. 여기서 잠시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논쟁을 담론의 차원에서 보는 것도 좋겠다. 자본주의 경제를 다루는 입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기술적인(technical) 부분이고, 또 하나는 근본적인 부분인데 사회주의자, 맑스주의자 등의 좌파나 시장근본주의자(하이에크주의자?)는 주로 후자 쪽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이들은 오히려 시장근본주의자가 아니라 케인스주의자나, 정책가의 입장에서 시장과 시장주의를 국가유지의 유력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다(아마도 sonnet 님 같은 사람들이 여기에 가까운 것 같다.).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왈가왈부야 원래 근본을 파고들기 좋아하는-그래서 radical이 아닌가-좌파들과 그들을 혐오하는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주된 밥줄이었지만,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기악화는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사람들조차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을 잠깐이라도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두 입장 사이의 합의나 의견공유가 존재할 법하지 않을까 싶다(물론 현실은 시궁창...).

4. 문제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기술적인 부분으로 커버 가능하느냐다. 예컨대 정부지출을 늘림으로써 소비자의 소득을 높여 대량소비를 유도해 경기를 부양하는 케인스식 처방(승수효과)이 유효하느냐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김항주 씨처럼 현재의 경기회복이 미국 정부의 긴급자금으로 인한 일회적 부양효과라고 회의적으로 바라볼 여지는 충분히 많다. 하물며 세계 경제가 거대한 그물망으로 엮인 네트워크 경제에서 실물-금융 간 불균형의 만성적 상태(과잉금융 문제)는 국민경제 단위로 생각하던 경제정책의 힘을 상당 부분 빼놓는다는 것도 고민거리다(우리나라도 경제정책 하나 세우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와, 무엇보다 미국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요컨대 현재의 금융위기는 단순히 금융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 전반의 문제이며, 세계 경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기로라는 건 여전하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좌파)과 기술적인 입장(케인즈주의자?) 사이의 논쟁과 합의가 필요하지 않는가 싶은 것이다.

5. 경제를 바꾸는 작업 자체는 본질적으로 기술적이다. 중요한 건 방향이고, 이 방향을 조정하는 작업을 누가 어떻게 주도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뀔 게다. 이건 일종의 역할분담에 대한 이야기인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좌파가 이 방향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우선적으로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한편, 이는 여전히 중앙집중적인 경제정책을 염두에 둔, 정책가 내지는 지도자로서의 좌파와 기술자로서의 경제학자라는 역할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좀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한 또 다른 대안은 어느 특정한 나라(미국, 중국 등)를 중심에 놓는 경제체제가 아니라, 네트워크망의 각 부분들이 작은 단위에서 독립적이되 각 단위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즉,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관점보다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의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이에 대한 약간 절충적인 개념으로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 경영학적 관점에서 제시되긴 하지만 여기선 패스.). 여기서 또 다시 폴라니가 소환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 것만 같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6. 김항구 씨가 지적했듯이, 중국이 아무리 미국의 주요 채권국이라 해도 미국 경제의 부침에 따라 요동칠 수밖에 없는 구조(미국의 소비시장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다는 점)라는 것은 세계 경제가 어느 한 나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서는 점점 위험도를 높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다. 이는 생물학적 다양성의 관점에서 봐도 위험한 일이다. 그가 비관하는 대로 미국 경제의 2차 붕괴가 왔을 때,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흥청망청할 수 있을까. 또, 우리나라도 경기진작을 여전히 기대할 수 있을까. 나는 걱정되고, 다들 좀 더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앞 길은, 여전히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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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로픈 2009/09/02 23:36 # 답글

    오오 저 기사, 열었다가 몇 문단 읽고 그냥 닫아버린 그 기사군요. 저에게는 경제 관련 기사들이 참 넘기 힘든 벽입니다. 저 기사는 전화 인터뷰인 탓인지 특히나 배려가 없는 느낌이더군요.
    암튼 글 잘 읽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정리가 되는 것 같아 좋네요. 3~5번 단락의 주장은 역시 논쟁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어떤 전공수업에서 경제학도와 장하준의 주장(<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드러난)을 가지고 그의 정체성에 대해 토론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방향과 기술에 대한 논의가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 leopord 2009/09/03 19:15 #

    경제학은 확실히 좀 까다로운 부분이 있어요. 인문/사회과학 중에서 가장 과학에 가까움을 자부하는 탓도 있고... 용어도 그닥 쉽지만은 않죠.ㅎㅎ; 저 글은 좀 경제학적 지식이 있다는 걸 전제한 내용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글은 제대로 읽은 게 거의 없어서 확실히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다만 방향을 중시하는 쪽과 기술을 중시하는 쪽 사이의 어떤 합의가 그 동안에는 거의 없었는데(흡사 여우와 두루미의 싸움이랄까...), 지금의 경제위기 앞에서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같이 강구할 여지가 생기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 원래그런놈 2009/09/02 23:37 # 답글

    솔직히 지금 경기가 좋아진다는 일각의 주장을 비웃고 있습니다. 과연 위기가 또 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 leopord 2009/09/03 19:17 #

    제2차 위기를 반길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어서요. 회복되면야 좋죠. 하지만 지금처럼 경기의 등락이 심하고, 투자가 침체되어 있고, 금융이 여전히 과잉팽창된 상태는 단기부양책만으로는 어떻게 손볼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라서요. 정말 경제는 생물과 같아서, 심각한 병이 치유될 때까지 끊임없이 고통을 견뎌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 카린트세이 2009/09/03 00:20 # 답글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능한한 로칼라이제이션적인 관점을 어떻게던 자리잡게 하는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제일 근본적인 처방은 일단 과잉생산을 줄이고 금융과 실물의 간극을 줄여야하겠지만, 그걸 위해서라도 지역주의를 좀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더군요.... 비슷하게는 대기업 하나보다는 중소기업 두셋이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드는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하에서는 그게 참 어려운 일인지라.... 사상에 반하는 행동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서 말은 이렇게 합니다만 저자신도 한-미 FTA 협정을 꽤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보면 뭐랄까.. 맑스의 예언이 진짜 실행되고 있는것도 같아 좀 뜨끔뜨끔 할때가 있습니다. 구주의 일부 좌파들이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의 시대' 운운하던 소리를 약간 들은적이 있는데, 가끔씩은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하더군요..
  • leopord 2009/09/03 19:22 #

    여기서 제시했던 로컬라이제이션(지역화)은 중소기업 육성·지원론과도 연관되겠지만, 무엇보다정치적인 해법이기도 해요. 국제정치경제 환경상으로는 미국 경제에 종속된 세계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자본이 국민국가 시스템을 넘어서는 상태에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이라서요. 조금 넓게는 지역간 블록(여전히 고민되는 한-중-일 경제공동체라던가)에서 출발해, 나라, 시·도 단위의 지역경제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점에서 각 지역이 엮인 연방국가제도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봐요. 이회창 총재의 '강소국 연방제'에 온전히 동의하진 않더라도요. 이건 이 총재의 발상보다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에서의 미 연방 결성 아이디어에 더 가까운 쪽이에요.

    한편, 맑스의 예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해야할까요.
  • 디오니 2009/09/03 01:38 # 답글

    어떤 식으로든 세계체제가 바뀌긴 하겠죠. 그게 자본축적 매커니즘 자체의 모순에서 촉발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저는 파국이 다른 방향에서 와서 삶의 양식을 바꿀 것만 같습니다. 축적을 위해 무지하게 써대는
    에너지 말이죠. 넋 놓고 있다가는 금방 한계가 올 거고, 그 한계가 강제하는 힘이란 어마어마하겠죠. 공황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사람이 죽어나갈 테고요. 말씀하신 대로 앞길은 정말 어둡습니다.
  • leopord 2009/09/03 19:25 #

    과잉저축->과잉투자->과잉생산->과잉소비로 연결되는 과잉의 연쇄는 경제의 체질과 인간의 생활체질마저 비대화시킨 거 같아요. 요컨대 너무 많이 쓰게끔 된 세상이란 말이죠. 허지웅 님 말대로 "조금 덜 부유하고 조금 더 가난하게 살기"는 조금씩 필연적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많이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생각해 봐요.
  • 여울바람 2009/09/03 11:26 # 삭제 답글

    음…. 어서바삐 달나라로 이민가고 싶습니다. (…) 달토끼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요….

    경제사를 공부하다보면, 하이에크는 자유주의자와 좀 다른 '괴상한' 존재인 것 같기는 합니다. 사족이지만, 그의 삶도 맑스와 별 다를바 없는 '시궁창' 인생(…).
  • leopord 2009/09/03 19:25 #

    하이에크는 꼬장꼬장한 영국 신사 같은 인상이기도 하고. 여튼 대단한 양반 같아요.

    음... 전 화성???ㅎ
  • 파파라치 2009/09/03 14:11 # 삭제 답글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좌파는 백년도 더 된 옛날부터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황혼"이라고 말해오고 있습니다만, 현실은 항상 "예언"을 비껴오고 있습니다. 인용한 글도 냉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공포심의 발로 또는 희망사항의 나열에 가까운 것 같군요(비록 "전직 헤지펀드 근무자"의 목소리를 빌렸다고 해도).

    맑스와 슘페터와 현대의 모든 경영학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고정적이 아닌 동태적이라는 겁니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위기속에서 돌파구를 발견했고, 스스로를 혁신해 왔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곧 자본주의의 종말과 연결시키는 것은 언제나 빗나간 예언으로 판명되어 왔지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100% 단언할 수는 없지만요.

    분명 자본주의는 언젠가는 사라질 겁니다(보다 정확히는 "현재의" 자본주의). 하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일지, 백년 후일지, 아니면 천년 후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정답일 겁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가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사회주의는 아닐 겁니다. 물론 "사회주의"를 특정 제도와 연결지을 수 있다고 하는 전제하에서 하는 말이지만.

  • leopord 2009/09/03 19:32 #

    경제학의 분과로 '경제성장론'이나 '경기순환론'이 나오는 배경도 바로 대공황을 포함한 수 차례의 공황 때문이었죠. 다만 맑스는 이 (과잉생산)공황이 자본주의의 내부 모순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는 그런 모순을 극복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통찰했다는 걸 빼놓아선 안 될 겁니다.

    언제나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혁신하는 자본주의의 특성은 그 자체 내재한 '선'이나 '미덕'이라기보다 프랑스 혁명 및 산업혁명과 함께 본격화된 근대와 모더니즘의 특성을 공유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은 분명 변증법적이에요. 하지만 자본주의의 내부 모순이 자본주의 경제방식 자체의 존속 뿐만 아니라 거기에 휘말리는 사람들의 삶 또한 황폐화시킬 것이고, 사람들(특히, 생산의 최전선에선 노동계급)은 그런 방식을 언제까지 견뎌낼 수 없다는 인식이 전제에 깔려있다고 봐야 합니다.

    즉, 맑스의 '예언'이 언제고 실현된 적이 없었으므로 빗나갔고 틀렸다 라고 말하는 건 맑스의 주장을 곡해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겁니다. 그 점에서 마지막 문단의 말씀은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틀렸습니다. 그건 정답이 아니라 평범한 답이죠.
  • 파파라치 2009/09/04 00:11 # 삭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자본주의 종말론은 냉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맑스도 예외는 아니고요.

    이미 맑스의 예언이 맞느냐 아니냐는 논쟁거리도 아닙니다. 이미 그는 백년 전에 예언가로서는 실패했기 때문에(그리고 바울이 그러했듯 바로 그 때문에 종교적 영역에 도달했지요). 위기로서 말하면 위기에 직면하지 않는 체제는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그 때문에 자본주의의 존속을 논의한다는 것은 지적 오만에 불과합니다.

    맑스의 예언은 언젠가는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에 두 번은 꼭 제시간을 맞추는 고장난 시계의 그것처럼 예언의 정확도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모든 체제는 언젠가는 쇠멸한다는 역사의 필연의 반영에 다름아니지요. 그런 무의미한 논쟁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요?
  • leopord 2009/09/04 12:50 #

    밑의 여울바람 님도 이야기했지만, 맑스의 주장을 예언으로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말씀하신대로 맑스의 예언이 실현되고 안 되고는 논쟁거리조차 안 되는지도 몰라요. 맑스의 통찰은 자본주의 형성/운용과정 자체에서 빛을 발하니만큼 그 지점에서 맑스의 주장을 파악해야 하지 않는가 싶습니다.
  • 여울바람 2009/09/04 11:58 # 삭제 답글

    갑자기 껴 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저 기사는 '자본주의는 망할 것이다아!'가 아니고, '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라는 뜻에 가깝우며, 현대 사회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유효성은 '자본주의 곧 붕괴될 것이요, 믿는 자에게 천국이 있나니'가 아니라, 19세기부터 지금까지 보여지는 자본주의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비판할 여지는 준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라 해서, 자본주의가 멸망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 볼 수 없습니다. 좌파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지요. 자본주의가 저절로 망하는 날은 없을 거라는 점, 각종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더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자본론은 사회주의 도래 예언책이 아니라 19세기 경제를 치밀하게 파고든 책에 가깝습니다. 읽어보셔요…. 재밌습니다.-_-;
    게다가 '자유주의 경제학'(주류 경제학)에서는 케인즈 이론을 제외하면, 공황 이론은 전무하다 시피 하는데, (언젠간 균형이 이루어지리라아! 라는 대예언과 함께…) 그런데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경제 현상을 설명할려면 '마르크스 경제학'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뭐, 언젠가 그 이론을 넘어 다른 이론이 등장할지도 모를일입니다만, 어쨋든 지금은 그렇습니다.

    물론, 이제야 말로, 자본주의가 멸망할 시기가 도래했다! 라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뭐랄까, 그건 좀 '논외'로 해도 될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한 종교는, 모대통령 후보의 747 공약을 믿는 거와 별 다를바 없지 않습니까;)
  • leopord 2009/09/04 12:49 #

    맑스의 주장을 예언으로만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만큼 일반인에게 맑스가 얼마나 곡해되고 있는가를 반증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나저나 저야말로 아직 <자본>은 안 읽었다는... 그 전에 <그룬트리세>부터 읽어야지 생각은 하고 있지만,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T.T
  • 오그드루 자하드 2009/09/15 23:23 # 답글

    자본주의가 우리 생각보다 훨 튼튼하다고 해도, 그걸 거덜내는 것은 인간이겠지요.

    http://media.daum.net/economic/stock/others/view.html?cateid=100035&newsid=20090914094309283&p=moneytoday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IB업무까지 사표를 던지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천재지변과도 같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하루아침에 1조원 이상을 날릴 수 있지만 뉴욕 AIG빌딩 매입처럼 계약한 지 며칠 만에 수천 억원을 벌 수도 있는 게 IB업무입니다. 그걸 왜 그만둡니까. 왜 포기합니까."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 leopord 2009/09/16 12:19 #

    여기서 보이는 것은 금융자본에 대한 여전한 믿음과 환상인데, 사실 이런 믿음이 1년 전에는 철통 같아 보였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렇게 이상해보이진 않습니다. 다만 학습효과의 부재랄까...

    칼럼만 보았을 때 언뜻 생각나는 문제는 AIG 빌딩의 자산가치는 그것의 보유여부가 아니라 유동화했을 때 드러나는 것인데, 지금 매입한 빌딩의 가치가 지금 4억 달러 상승했다 해도 경기변동에 따른 등락이 4억 달러를 보상할지, 추가적인 가치를 보태줄지 모른다는 거죠.

    결국 이 빌딩도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의 형태로 유동화되었을 테지만, 경기회복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PE·금호종금의 AIG 빌딩 매입은 국민연금의 투자실패와 같은 전례를 반복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눈 먼 돈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금융당국자의 눈을 멀게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비웃을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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