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무한회귀의 주인장

1. 원래는 여유있게(?) 부탁받은 짧은 글도 쓰고(고료는 없다ㅋ), 기든스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서평을 쓰려고 했다. 했는데, 트위터 하느라 서평이고 뭐고 수다로 밤을 하얗게 새버렸다.ㅋ 트위터의 매력은 수다에 있다. 핸드폰에 연결하지도 못해 그저 웹으로 밖에 접속 못하는 환경에, 트위터 이웃들과 함께 말하는 분위기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했던 탓에 계속 버벅댐을 느낀다. 그럼에도 오늘, 아니 어젯밤은 퍽 재밌었다.

2. 블로그는 글이고, 트위터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트위터에서 '말하는' 게 그닥 쉽지가 않다. 말은 하고 싶은데 그게 자꾸 입안에서 맴돈다고 해야 하나. 누가 말하고 있는데 괜히 끼어들기 멋쩍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평소 오프에서 사람을 대할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나와 가만 비교해 보면, 트위터가 오프를 퍽 닮았단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트위터를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말하는 습관 같은 게 보이는 거 같아-어디까지나 인상비평이다-재밌다. 거꾸로 말해서, 나도 내 습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단 얘기.

3. 새벽에 트위터에서 얘길하다 문득 든 생각 : 난 사회과학도라지만 순 엉터리 사회과학도로구나. 사회과학책이 8,90년대의 맑스-레닌주의 책(및 맑스-레닌주의 비판 책)을 의미했다면 나를 사회과학도라고 하는 것도 거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정성적인 분석을 넘어 정량적인 분석으로 들어가는 단계에 대해 난 한 번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내가 배운 정치학이란 건 계량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곳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와 토크빌과 맑스, 그 외 아렌트, 롤스, 프랜시스 후쿠야마, 대니얼 벨이 서로 다투는 장, 규범적인 분석의 장이었다. 정치사상의 지평을 넘어가면 보통은 미국 정치, 잘해야 유럽 정치를 표준으로 하는 비교정치 필드가 있고, 현실주의 이론에 거의 잠식당한 채 외무고시 합격자라는 '비빌 언덕'조차 없어 일찌감치 힘을 잃은 우리학교 국제정치 파트가 있다. 군대 갔다온 사이에 교육과정이 바뀌어서 정치학연구방법론이라는 이름으로 SPSS 돌리며 지역민과 여론조사 결과, 선거구 예상득표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구하는 수업이 기본으로 되어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이것도 공부해 본 적이 없다.

4.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 와서는 내가 했던 정치학 공부보다 좀 더 실증적으로 보이긴 한다. 졸업 전까지 계량경제학도 들어두면 좋을텐데 끝내 못 듣게 생겼다. 실증적이고 정량적인 연구, 난 사실 그런 거 잘 못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 번쯤은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체 언제였을까. 역사학자를 꿈꿨고, 국문학도가 되길 바랐던 열아홉의 내가, 수학이라면, 경제라면 개미에 뜯기는 길가의 메뚜기 보는 양 싫어하던 내가 생각이 바뀐 날은.

5. 이 무한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제학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경제학을 공부해서 돈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는 거.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은 말했다.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그건 바로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다." 정답이다. 알프레드 마셜이 <경제학원론>을 써냄으로써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에서 해방시킨 바로 그 날부터, 경제학의 효용은 거기까지다. 안타깝게도 경제학은 여전히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점에서 발생하는 균형은 정상적 상태가 아니라 이상적 상태다. 자기조정시장은 환상이다(폴라니를 모르더라도 이 정도 허구를 인지하는 일은 무척 쉽다.). 경제학은 분명 재밌는 학문이지만, 내겐 그저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을 정도면 족한 것 같다. 이걸로 석사 이상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의 나는 잘 모르겠다.

6. 그럼에도 나는 우석훈이 낼 거라고 얘기하는 '사회과학 방법론' 책이 좀 빨리 나와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 책 한 권으로 내가 사회과학에 대해 갖고 있는 맹점과 약점이 한 번에 봉합될 리 없겠지만.

7. 문·사·철. 나는 사회과학도라는 자리에 안주하면서 이 세 가지를 끊임없이 넘보았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다. 그저 역사에 대해 조금 이야기할까 말까. 자괴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특히나 안주할 수 없는 요즘이기에 그렇다.

8. 곧 있을 수업시간에 벌칙으로 노래를 부르게 됐다. 고민(?) 끝에... 루시드폴의 <오!사랑>으로 정했다. 아무래도 자는 건 포기해야겠는데, 아침 9시까지 목이 멀쩡할지 모르겠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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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校獸님ㄳ 2009/10/01 07:38 # 답글

    계량경제학은 학교 기초통계학교재 끝까지의 분량입니다. 기통2까지 들었었는데 잘 안되네요 ㅋ

    경제학과 2학년 2학기가 되니까 경제학 전공자들은 돈을 잘 벌 거란 얘기에 대처하는 법들 몇가지를 알게 되었어요.
    주식이나 선물 옵션 이런 거 잘하겠습니다.>>그건 경영학과 재무관리 잘하는 사람이 잘합니다.
    회계사하시는 거 아니에요?>>경영학과나 회계학과가 더 가깝습니다.
    세무사는요?>>그것도 회계사랑 비슷하고요..
    졸업하면 은행원되는 거에요? 우와>>은행원이 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 leopord 2009/10/01 16:56 #

    결국 기통을 제대로 이해 못하면 캐난감해지는 거군요.ㅋ

    주식이나 선물 옵션은 그래도 화폐금융론->자본시장이론->파생금융상품의 이해 등으로 어떻게 커버하겠지만 나머지는... (먼산)

    마지막의 은행원 얘기를 정외과 식으로 바꾸자면...

    졸업하면 정치인(가끔은 기자) 되는 거에요? 우와아>> 보통은 영업이구요. 잘 하면 정치꾼이고, 더 잘 하면 기자하는 거죠. 결국 셋 다 영업이지만. (...)
  • stcat 2009/10/01 19:49 #

    정외과 나와서 금속노동자가 된 사람도 꽤 많...
  • 離緣 2009/10/01 11:55 # 답글

    너랑 누구들이랑 노래방 가고 싶다! [뜬금없음!]
  • leopord 2009/10/01 16:57 #

    나 노래방 안 간지 한 오백년ㅠ 담에 만나면 노래방이나 가자긔☆
  • 후유소요 2009/10/01 20:37 # 답글

    저도 트위러 때문에 밤을 하얗게 새고...ㅠㅠ 정말 요물이어요, 이 트위러라는 것. 후후.

    저도 노래방 디게 좋아하는데! 언제 알렙님과 기타 분들을 꼬셔서 다같이 노래방 벙개 해요 >_<
  • leopord 2009/10/03 20:27 #

    ㅋ 그러게요. 언제 한 번 노래방 벙개해요. 후훗.
  • 후유소요 2009/10/03 21:26 #

    그럼 레오포드님배 노래방 벙개.. (은근슬쩍 떠넘기기 >_<;;)
  • leopord 2009/10/04 23:13 #

    어? 전 왠지 후유소요 님배 노래방 벙개 하면 더 좋을 거 같은데요?ㅋㄷㅋㄷ (다시 막 떠넘기고ㅋ)
  • 墨血 2009/10/01 21:04 # 답글

    우석훈샘 블로그에 글남긴거 보고 쫓아왔수. 페이퍼 사진 간만에 보니 또 감회가 새롭구랴...
    썬님 태양님 결혼하신다는데 결혼식 올거임?
  • leopord 2009/10/03 20:27 #

    앜ㅋㅋㅋㅋ 그 묵혈이 설마 이 묵혈인가 했더니. 역시 설마가 사람 잡는구랴.

    결혼식 갈꺼임. 그 날 봅시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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