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형 블로그] 김현진, 마지막으로 무한회귀의 주인장

김현진, 마지막으로
(한윤형 블로그)

이글루스에 잠재해 있을 김현진까를 위한 글. 아마도 그들에게 가장 효용이 있을 글. 그럼에도, 아마도 마음에 들진 않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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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세하게 적는 것은 내키지 않아 망설였는데, 사태를 둘러싼 혼란스러운 인식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없이 정리해 봤다.


먼저 사실만 건조하게 적어보자.


김현진이 사람을 때렸다.그것도 여성을. 때린 이유는 폭력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닌 상식인의 입장에서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피해자의 상처 수위는 전치 2주였다. 의사는 맞은 직후에 왔으면 전치 3주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냥 툭툭 치는 폭력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법적 개념으로 '상해'까지 가는 수준의 폭력은 아니었다. 좀 애매하긴 하지만 대체로 검찰에서 구속기소를 하는 수준은 전치 4주부터라고한다. 뭐 의사에게 폭행 피해자라고 말하면 전치 4주로 그냥 해준다는 얘기도 들었으니, 이 기준이 그렇게 엄밀하지는 않다. 여하튼이 사건을 법리적으로 건조하게 기술하면, 고소를 했을 경우 김현진은 약간의 벌금을 물고 끝났을 것 같다.


피해자는 고소를 원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한 공포심 때문에 가해자를 다시 보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피해자에겐 심리적인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피해자가 원한 것은 김현진이 자신의 블로그에 사과문을 올리는 것이었다. 피해자가 원한 것은 가해자의 사과의 진심뿐 아니라, ‘글쟁이’ 김현진이 자신의 행위를 독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반성하는 그 행위였던 것 같다.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여하튼 그런 요구도 이해할만 하고, 정당했다. 고소를 하지 않는 대가로 쌍방이 합의한 것이 그거라면 더더욱 그렇다. 김현진의 사과문은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고 평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여하튼 본인의 이해할 수 없는 폭행의 과정을 서술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는 했다. 그러나 나중의 시점에서 당시를 서술하자면, 피해자는 김현진의 사과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후 김현진은 블로그를 접었고, 그렇게 이 사건은 끝나는 듯 했다. 문제는 그녀가 낸 신간에서 불거졌다. B급 연애담에 대한 그녀의 책에 피해자의 사례가 한 사례로 들어가 있었다. 이것도 상식인의 입장에서 납득이 가는 일은 아니다. 자기가 때린 여자의 사례를 왜 책에 써먹는단 말인가. 가장 선의적으로 해석한다면, 폭행사건이 있기 전에 넘긴 원고를 미처 검토하지 못하고 그냥 낸 것일 게다. 물론 이것도 작가의 부주의다. 도대체 그걸 왜 까먹어. 피해자는 기분이 나빴다.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자기 얘기는 빼달라고 했다. 출판사는 이미 나온 책의 회수는 곤란하고 2쇄부터는 그 얘기를 빼주겠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그 제안에 동의했다.


그후 몇 가지 이 사건을 스캔들(?)로 비화시킨 소소한(?) 계기들이 있었다.


김현진을 욕하는 블로거와 김현진을 옹호하는 블로거가 싸웠다. 피해자는 다시 한번 기분이 나빴다. 서점에 가서 책을 확인했다. 2쇄가 나왔는데, 수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히 화가 난다. 출판사에 전화를 했더니 사실은 1,2쇄를 한꺼번에 찍었다고한다. 3쇄부터 바꿔주겠다고 한다. 피해자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아니다. 피해자는 인터넷에 이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말했고, 출판사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피해자는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 폭로글을 쓴다. 제목은 “김현진 작가에게 글을 도용당했습니다.”다. 이 글은 거의 올라오자마자 이오공감에 올랐고, 이틀 후 내려오기 전에 400에 육박하는 (혹은 넘는) 전무후무하고 가공할만한 추천수를 기록했다. 이왕 사건을 폭로하기로 한 상황에 피해자가 자신의 글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 했다는 것은, 그러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은,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글의 내용이었다. 그 글의 내용은 지금 내가 서술한 건조한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었다. 김현진과 그녀의 친분에서부터시작하여, 폭행 당시의 자세한 상황, 폭행 이후의 그녀의 행동, 까지의 상세한 내용이 기술된 일종의 서사였다. 그 내용은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받기 위한 필요 이상으로 김현진이라는 이름의 사람의 사생활 정보를 낱낱이 까발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로 그랬기 때문에, 그 글을 보고 김현진에게 분노를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김현진이 남자친구의 양다리에 슬퍼할 당시에 자신도 양다리였다거나 폭행 직전의 피해자가 찾아 냈을 때 옆에 있는 남자를 껴안고 있었다거나 하는 종류의 얘기들이 (적혀 있었던 얘기들은 이보다도 훨씬 상세한데)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지만 바로 이런 얘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김현진을 “좋은 사람인 척 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나쁜 년”으로 규정하고 무한대의 분노를 터트릴 수 있었던 거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건 명예훼손이다. 법리적으로 볼 때는 적어도 김현진이 했다는 도용보다는 훨씬 무거운 범죄일 것이고, 폭행사건에 대해 고소를 하여 쌍방 맞고소를 한다 해도 어느 쪽이 더 피해를 볼 지도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해자의 ‘대응폭력’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난 절대적 평화주의자가 아니라서 대응폭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피해자와 김현진 간의 권력관계에서 김현진이 우위에 있다면, 그런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이틀 후 뒤늦게 명예훼손의 위험을 자각한 피해자가 자신의 글을 내리고, 출판사 및 저자와 협의를 하면서 종료된다. 쌍방 고소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김현진의 각서와 사과문을 피해자 측에 전달하고, 3쇄에서는 피해자의 얘기가 아닌 다른 얘기를 넣기로 했다. 해당하는 원고는 이미 저자에게 받아놓은 상태라고 했다. 전반적으로 봐서 출판사의 초기 대응이 미진하기는 했지만 사건 발생 이후 출판사와 저자가 신의있고 성실하게 반응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


이 정도면 사건은 끝난 것이며 그 외의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구석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사건당사자인 것처럼 ‘김현진 비판’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근데 가만히 듣고 있자면 이건 ‘비판’이 아니다. 사람 패고 글 도용한 쌍년이 글을 쓰는 꼴을 우리가 방치해야 하느냐, 합심하여 그녀가 더 이상 글 팔지 못하고 살도록 하게 해야 한다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이 그런 수준이란 건 그들이 “사태를 다 봤지만 그래도 난 김현진의 글을 좋아한다(읽겠다).”고 말하는 블로거들에게 가서 난리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네들은 그것이 ‘소비자’로서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을 ‘소비’하겠다는 다른 ‘소비자’를 타박하는 소비자 운동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들의 행동은 피해자의 합의문의 내용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김현진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앞으로도 지켜보겠다고 했지 글을 쓰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보다 못해 이택광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몇 마디를 했다. 요약하자면 이 사건을 관통하는 집단적 다구리의 방식이 박재범 사건과 별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사태의 파장의 크기에 차이가 있고, 박재범보다는 김현진이 훨씬 잘못했다는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보아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니다. 가령 모 블로거는 한겨레 데스크에 그녀의 글을 빼라고 난리치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건 김현진의 글이 불량상품이니 소비자들을 설득하여 먹지 못하게 하자는 수준을 넘는다. 말하자면 변희재가 “박재범과 박진영을 퇴출시켜야한다.”고 말했던 그 시장(?)의 논리다. 그래서 이택광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아 있습니다. 애국주의라는 측면만 빼면 말이죠. 일단 '추방'과 '배제'라는 정서에서 그렇고, 공공성을 빙자해서 타인의 행복추구권을 인정하지 않고자 하는 감정들이 비슷하죠.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비난의 대상에게 '사회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리려는 게 목적이죠.” 독해력이 부족한이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행복추구권’은 김현진의 사람을 패거나 원치 않는 사람의 사례를 인용할 권리가 아니라 글쓸 권리를 말한다.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면 어쩔 것인가. ‘자유주의’를 자유주의적 정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내가 좋은 것을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것’이라 본다면 어찌할 것인가? 김현진을 비난할 수는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글을 읽지 않겠다는 사람을 말릴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을 읽겠다는 사람도 존중되어야 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하려고 하면서 스스로가 정의를 행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김현진의 글을 읽지 않는다. 억지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녀의 글이 내게 필요한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글이 필요할 수도 있을 거다. 그 영역은 나와 관계없는 세계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녀의 글 쓸 권리를 다른 사람들이 논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는 거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이 사건을 통해 김현진의 글 쓸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싶기 때문에 사실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사태를 잘 모르고 개입해서 그러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에는 잘 모르는 얘기를 흥분해서 하는 것이 그리 적절한 일은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1) ‘표절’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정말 표절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그 글쟁이의 글 쓸 자격에 대해 논할 수도 있을 거다. 근데 전체 책에서 몇 줄에 해당하는 남의 사례를 허락없이 인용했다고 해서 그걸 표절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피해자의 합의문을 보면, 이 사태는 ‘도용’도 안 되고 ‘복제’라는 개념으로 정의되었다고 한다.

2) 남의 사례를 자기 사례처럼 써먹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김현진은 남의 사례를 이니셜을 써서 썼다. 서술이 너무 상세해서 문제가 됐지만. 역시 이 건과는 관련이 없다.

3) 그 사례 서술에서 피해자를 비하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4) 이 모든 과정에서 김현진이 사과를 하지 않고 나댔다는 사람이 있다. 피해자의 텍스트를 통해 사태를 살펴봐도 그렇지는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김현진의 글을 불량식품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정당하다. 근데 그러려면 이렇게 사실을 막연히 아는 대중의 분노에 편승해서 상대방의 ‘사회정치적 사망’을 욕망해서는 안 된다. 이번 건은 김현진의 글쓸 권리를 논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런 주장을 하고 싶다면 김현진의 이전 글에서도 어떤 문제가 드러났다든지, 그녀의 신간이 이러저러한 의미로 허접하다고 세밀하게 비평하면 될 일이다. 그런 노력들이 겹치고 김현진의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획득한다면, 시장은 김현진의 글 팔 자격을 박탈할 것이다. 그런 게 ‘변희재의 시장’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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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10/18 00:23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opord 2009/10/18 00:35 #

    점점 더 알아야 할 게 늘어나는, 기든스가 말했던 '영리한 인간들의 세계'가 바로 지금일 것 같아요. 법도, 의학도, 영양도 스스로 알아야 하는, 어찌보면 자율적이고 다르게 보면 또 신뢰가 흔들리는 세계.

    전 전속 변호사를 고용하긴 힘드니 그저 법 공부하는 수 밖엔 없겠는데요?ㅋ
  • 마음 2009/10/18 01:32 # 답글

    근데 정말 궁금한 것이 표절의 정의가 어떻게 되고 범위가 어떻게 되는건가요? 고무줄 처럼 왔다갔다해서,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난처하기 짝이없네요.
  • leopord 2009/10/19 14:26 #

    표절의 정의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긴 해요. 맥락만으로 보기도 좀 그렇고요. 덧붙여, 이번 논란의 방점이 표절이 아님에도 묘하게 표절로 엮어서 판을 키우려는 듯한 모습도 있는 거 같아 입맛이 씁니다. 표절에 대한 대중의 혐오감을 이용한다고 해야 하나요...
  • 바로서기 2009/10/18 01:58 # 답글

    너너 시간 없다더니...!!
  • leopord 2009/10/19 14:26 #

    글 인용도 안 되나효ㅋ
  • baltak 2009/10/19 23:57 # 답글

    김현진의 글 쓸 권리에 대한 박탈 만을 주장했다기 보단,
    그녀를 두고서 좌파나 진보 진영의 진정성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그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시는군요. 독해력이라는 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균형을 잡기가 참 힘들죠.

    그리고 김현진은 한 개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사회 의식과 가치관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많은 선배 필자와 논객들이 다음 세대의 아이콘으로 밀어주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그냥 김현진이 감정적으로 싫어서 흥분하고 땍땍 거린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만,
    거기에는 분명히 생각해 볼 만한 어떤 문제적 현상이 있기도 합니다.

    이 문제도 김현진의 대외적인 활동 영역과 사적인 활동 영역의 오랜 부조화 때문에
    더욱 복잡한 의견 충돌과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혼란스럽거든요.
    그녀가 여성들을 동지로서 응원하던 공식적 멘트와 사석에서 상대 여성에게 발휘하는 판단 기준이
    일치하지 않거든요. 그녀가 어쩌다 한 번의 실수로 그랬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감정적으로 달려들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녀더러 글을 못 쓰게 펜을 부러뜨리라는 게 아닙니다. 나름 주류세력과 대척점에서 세상의 변화를 위해
    싸운다는 사람들이 입과 글로 말하는 것과 실제 행동이 다르다면, 그들의 말과 글로부터 의식의 일정부분을
    다져가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겁니까. 그저 글과 그 실제 사람의 인격을 분리해 둘까요?
    그러면 그 말과 글의 주장은 무슨 힘을 갖을까요?
    만약 제가 말로만 정의를 외치고 실제로는 많은 부분에서 반대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면,
    전 이것이 충분히 문제적인 상황이라고 봅니다. 그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 것인지요?

    이전 세대의 운동권 남자들이 앞에선 진보 정의를 외치면서도 생활에선 그토록 남성우월적이었다는
    비판을 하고서는, 그 똑같은 부조화를 저희 세대도 답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무슨 변화를 바란다고 한다면요. 변화가 그리 대충 쉽게쉽게 이루어질 거 같진 않아요.

    김현진과 관련된 상황은, 그녀의 글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현실과 관계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소설이나 시 그림 같은 예술 작품을 쓴게 아니거든요. 그녀는 오히려 활동가에 가까운
    인물이에요. 활동가의 글은 글 내부에만 머무르는게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과 다르게 현실과 엮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의 나의 주장은 허구였다라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비소설 에세이를 쓰고나서
    내 주장은 허구였다라고 말하면, 이건 무슨 새로운 장르의 허구 문학인가요.

    그래서 그녀에게 글을 못쓰게 두 손을 꽁꽁 묶어두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역할과 글과 독자들에대해
    다시 바로 생각하라는 거에요. 그녀는 자기만의 작품을 쓰던 사람이 아니라 항상 외부 현실과의 접촉을
    울부짖던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항상 사회.정치적 함의에서 판단 받을 수 밖에 없는 거라고 봐요.
    그녀 스스로가 개개인의 생활이 바로 일상 속에 드러나는 정치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잖아요.

    아무튼 그녀의 글 쓸 권리에 대한 박탈이 아닌 다른 의미의 시선과 접근이 있었다는 것도
    염두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쓰신, 시장이 알아서 글 쓸 권리를 박탈 할 거라는 말씀은 격한 감정의 표현법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런 단순한 시장 원리의 작동은 정말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수요 공급 그래프
    에서나 가능한거니까요.
  • 님의 글을 읽고 2009/10/20 00:09 # 삭제

    있노라면, 정확히 하나를 말씀하시기 위해 하나를 놓치시는 걸로 보입니다.
    님의 논지속에서 폭력을 제거하기 위한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체현하신듯. ㅡㅡ
  • 스타라쿠 2009/11/03 05:01 #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폭력을 제거하기 위해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용산참사는 자초한 일이고, 모든 투쟁은 투표소 외에서는 절대 불법입니다.

    이러니 입진보 소릴 듣지요,

    입으로는 사회 정의, 지들끼린 싸고돌기.
  • 스타라쿠 2009/11/03 05:09 #

    까는 쪽이나 옹호하는 쪽이나 어쩜 이리 추한가요. 동네 노는 패거리들과 뭐가 다른겁니까?

    편가르고 뒷공작하고, 주먹 대신 글빨, 말빨로 조지는거 외에 대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답답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고 투표를 하러 갈 생각을 하니...

    볼상 좋게 대의를 부르짖을 거면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 정도는 품게할 만한 위선이라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 baltak 2009/10/20 02:21 # 삭제 답글

    어느 부분이 폭력적일까요......제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저역시 바로 고쳐야겠죠
  • baltak 2009/10/20 02:31 # 답글

    아 그리고 혹시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개인이 카드 결제기를 두 대 놓고,
    하나는 소속 되어있는 건물주에게 공식 제출용으로 하나는 자기 개인 계좌로 들어가도록 두고
    사용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 걸까요? 물론 그 액수가 어마어마하게 큰 액수는 아니지만요.
  • leopord 2009/10/20 22:22 #

    매체와 블로그에 대한 비유인가요? 아니면 비유가 아니라 실제를 물으시는 건가요? -.-;;;

    전자에 대한 비유였다면 그닥 적절하지 않은 듯 한데요. 매체던 블로그던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지금 같은 언론환경에서 그 구분이 점차 모호해지고, 불특정 다수의 참여/관찰로 인해 글의 의미가 작성자의 의도와도 멀어지고 있으니까요.
  • baltak 2009/10/21 01:09 # 답글

    예 비유였다면 적절하지 않죠. 실제를 물어본 것 입니다.
  • leopord 2009/10/21 02:08 #

    제가 그것까지 알기는 좀...^^a;;;
  • baltak 2009/10/21 03:16 # 답글

    네, 아 전 그냥 가볍게 물어본 거였습니다. 대화 고맙습니다.
  • outofegloo 2009/11/08 22:51 # 삭제 답글

    한윤형씨, 김현진씨와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우정을 바탕으로 쓴 글일 뿐이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저는 한윤형씨의 글에 전혀 공감할 수 없습니다.

    최근 소비자운동의 조류는 조선일보에 대한 직접적인 불매운동 또는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하는 대기업의 물건에 대한 불매운동까지도 주장하는 언소주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일한 차원에서, 또 글이라는 특수한 문화상품의 성격에 비춰볼 때, 나는 소비자들의 이를테면 '김현진의 글쓰기를 금하는 운동'으로 불리워질 수 있는 차원까지 나아가는 것도 정당한 소비자 주권 운동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한 곤란을 타개하는 것은 결국 당사자인 김현진의 몫이며, 소비자들에 대한 비난으로 나아가는 것은 오히려 한윤형씨가 비난받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글이라는 문화상품은 한 사람의 삶과 생각이 어우러져 탄생되는 진정성있는 철학과 사색의 소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입으로는 미사여구를 늘어 놓으면서 뒤로는 온갖 추악한 행태를 일삼는 정치인들에게서 역겨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과 괴리된 위선적인 글을 쓰는 작자와 그 작자가 쓴 글이 대중에게 읽혀진다는 것에도 역겨움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김현진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쿨한 글을 쓰려고 애쓰는 쿨하지 못한 된장녀. 그게 소비자들이 위선의 가면이 벗겨진 김현진에게서 본 추함입니다. 적어도 조선일보나 변희재는 일관된 철학과 일관된 행태는 보여준다는 점에서 김현진보다는 더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쟁이이며, 실소를 자아내게 할지언정 그 글에서 위선의 그림자를 볼 수는 없다는 점에서 훨씬 도덕적인 글쟁이입니다.

    나 역시 한윤형씨가 비난하는 그 사람들과 같은 입장인데 지금 김현진에게 필요한 것은 절필이라고 봅니다. 설익은 생각으로 설익은 잡문들을 마구 여기저기 늘어놓기보다는 참되고 올바른 가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기에 힘쓰고 부끄러운 오늘을 죽는 날까지 뼈에 사무치게 반성하며 사색의 열매가 충분히 익었을 때 다시 펜을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김현진이 글이 지면에 등장하는 것은 위선자의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정치판을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한 때 김현진의 글에 애정을 가졌던 적이 있었고, 아직도 그에게서 남아있는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권할 수 있는 말입니다. 혹시 친구된 입장으로 김현진을 만나게 되거든 어설픈 위로와 변호보다는 과감한 절필을 권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글쵸 2009/11/09 11:56 # 삭제

    명료합니다.
  • 아웃오브이글루 2009/11/10 02:56 # 삭제 답글

    위의 아웃오브이글루님의 글에 공감만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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