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pord의 무한회귀



정치경제학의 탄생 서평 관련 글

하지만 구호 대상 극빈자들을 아무리 데려다 써봐야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없는 경제학적인 이유는 전혀 어려운 질문이 아니며, 당시의 사상가들도 이 점을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오언보다 거의 150년 전에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같은 이가 1704년에 출판된 한 팸플릿에서 벨러스와 로크로 시작된 이 주제의 토론을 이미 완전히 궁지에 몰아넣은 바 있었던 것이다.

(…) 그의 팸플릿은 시혜를 베푸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빈민들을 고용하는 것은 온 나라의 민폐가 된다는(강조는 본문) 실로 악마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고, 바로 그 뒤로 맨더빌 박사(Doctor Mandeville)의 더욱 유명한 『꿀벌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가 출간된다. 운율도 제대로 맞지 않는 이 엉터리 문체의 풍자시는 풍요롭게 번성하는 가운데에 세련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꿀벌 나라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나라가 번성하는 이유는 오로지 모든 벌들에게 허영과 시기심, 악덕과 낭비를 일삼도록 조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괴짜 박사님의 저술이 기껏 얄팍한 윤리적 역설을 제멋대로 떠들어댄 것에 불과했음에 반해, 디포의 팸플릿은 새롭게 태어날 학문인 정치경제학의 기본적 요소들을 적확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18세기에 들어오면서 빈민 문제를 포괄하는 치안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중요성이 떨어지는 정치학'(inferior politics)으로 불리면서, 디포의 팸플릿은 이 문제들을 다루는 작은 집단들 밖에서는 곧 잊히고 만 반면, 맨더빌의 싸구려 역설은 엉뚱하게도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데이비드 흄·스미스 등과 같은 대사상가들로 하여금 머리를 싸매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분명히 18세기 전반에는 맨더빌이 초점을 맞추었던 화폐적 부(mobile wealth)의 문제가 여전히 중요한 도덕적 이슈였으며 디포가 다루고 있는 빈곤 문제는 아직 그렇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p.33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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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이전의 정치경제학은 중상주의 국가의 행정학이었고, 중상주의 국가의 경제란 곧 국가적인 단위의 가정관리(oeconomy)라는 개념을 끌어안고 있었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던 시대의 가장 강렬한 사건은 바로 빈곤과 빈민의 범람이었다. 특히 이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발상지라고 알려진 영국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났고, 이에 대한 반응 또한 격렬했다. 폴라니는 영국에서 태어난 '정치경제학'이 무엇에 영향을 받았는가를 지적하고 있다. 퀘이커 교도였던 존 벨러스의 윤리적 시혜 정책과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이중 스파이였던 디포의 냉소적 사회 인식 사이의 어딘가에서 빈곤 문제를 해소하고자 했던 시도가 바로 정치경제학이라는 것이다.

『꿀벌의 우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토머스 맬서스가 아닌가 싶다. 영국 정치경제학의 시조 중 하나이자 성공회 목사였던 맬서스 씨는 빈민들이 그야말로 '벌떼같이' 몰려 국가를 갉아먹고 자신들마저 갉아먹을 것을 탄식한 바 있다(『인구론』 등의 저작에서 그런 표현을 직접적으로 썼다는 얘기는 아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그의 주장은 '수확체감의 법칙'(19세기는 '법칙'의 시대 아니었겠나.)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맬서스 씨는 집집마다 쏘다니며 적극적으로 피임을 권장했다고 하니, "남자는 여자를 멀리하고 자위를 해야합니다"는 주장의 시조가 바로 그 양반 아니었을까.

"시혜를 베푸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빈민들을 고용하는 것은 온 나라의 민폐가 된다." 이 아이디어는 지금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18세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다니엘 디포의 흥미로운 이중 생활에 대해서는 장하준이 잘 소개하고 있어서 발췌.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다니엘 디포의 인생은 다채로웠다. 그는 소설을 쓰기 전에는 모직물과 양말·포도주·담배를 수입하는 사업가였고, 왕립복권회사와 주택의 창문 수에 따라 재산세를 징수하던 악명 높은 창호세 사무소 같은 정부 기관에서도 일했다. 또한 그는 정치 팸플릿의 저자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정부 스파이로 이중생활도 했는데, 처음에는 보수당인 토리당 출신 하원 의장 로버트 할리를 위해, 나중에는 할리의 정적인 로버트 월폴이 이끄는 자유당인 휘그당 정부를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느라 그의 인생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디포는 경제학자로도 활동했는데, 경제학자로서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로빈슨 크루소』와 『몰 플랜더스』 등 그가 쓴 소설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쓴 주요 경제 저작인 『영국 상업 발전 계획』(1728)은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다.

(…) 경제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흔히 다니엘 디포가 쓴 소설의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를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 경제학의 영웅인 '합리적 경제인'의 원형으로 거론하곤 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크루소는 혼자 살면서도 늘 '경제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소비와 여가에 대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 있어 합리적인 인간답게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일 수 있도록 행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크루소가 가까운 섬에서 혼자 사는 다른 사람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두 사람은 어떻게 거래를 해야 할까? 자유 시장 이론은 시장(교환)을 도입해도 크루소가 처한 상황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하지만 디포의 『계획』을 뒷받침하는 경제학은 로빈슨 크루소의 경제학과 완전히 상반된다. 디포는 『계획』을 통해 영국의 모직물 제조업을 발전시킨 것은 자유 시장이 아니라 정부의 보호와 보조금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헨리 7세는 자신의 조국이 유능한 원모 생산자인 만큼 계속 그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시장의 신호를 무시하고, 이 달갑지 않은 진실을 고의로 왜곡시키는 정책을 도입함으로써 영국을 선도적인 제조업 국가로 변모시키는 과정의 막을 열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헨리 7세처럼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필요하다. 결국 디포는 스파이로서도 이중적으로 생활했지만, 경제학자로서도 이중적으로 생활한 셈이다. 그의 소설은 디포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유 시장 경제 이론의 중심적인 인물을 창조했고, 그의 경제 분석은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의 한계를 뚜렷하게 입증했으니 말이다.

-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p.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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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opord의 무한회귀 : 거대한 전환 2010-11-12 18:47:56 #

    ... , 지주들은 이를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했다. 빈곤은 도시로 확장되고 또 심화되었다. 빈민의 거대한 물결은 이후 정치경제학의 탄생과 직결된다(leopord, <정치경제학의 탄생>). 1834년 이전까지는 영국에 경쟁적 노동 시장이 확립되지 않았고, 따라서 산업 자본주의도 사회 체제로서 그 후에야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 ... more

덧글

  • 소시민 2010/11/09 11:49 #

    로빈슨 크루소는 자신의 처한 환경의 경제 주체가 자신과 프라이데이 정도니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 아니었나 싶네요. 하지만 현실 체제에서 그런 가정은 무의미하니까요.
  • leopord 2010/11/10 20:44 #

    로빈슨 크루소는 경제학원론 강의 같은 데에서 리카도의 비교우위를 설명할 때 쓰이곤 해서요. 자원의 희소성보다 노동 생산성 얘기로 들어가는 거죠. 즉, 프라이데이가 로빈슨 크루소보다 노동 생산성이 높아서 생산물 분야의 '절대우위'를 차지한다 했을 때, 둘이 역할을 나눠서 생산하고(예 : 물고기잡이와 사슴 사냥), 이를 교환하는 비율은 각 분야별 '비교우위'에 달려있다는 추론에 기반합니다. 그러니까 프라이데이가 물고기잡이랑 사슴 사냥 둘 다 잘 해도 한꺼번에 다 하는 건 생산량의 한계가 있으니까, 프라이데이는 주로 물고기를 잡고 로빈슨 크루소는 주로 사슴을 잡아서 교환하는 게 둘 다 이득이라는 얘기죠.
  • leopord 2010/11/11 00:26 #

    첨언. 이 추론에서 '자유무역의 이익'이라는 결론이 도출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국제무역의 당위'까지 언급되는 겁니다. 모두가 경제적인 이익에 유인되는 '개인'으로서, 즉,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의 신화가 나타난다는 얘기...는 잘 아실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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